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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의 에코파일] 담배꽁초는 쓰레기가 아닙니다, 유해 폐기물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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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배수구 안에 빼곡한 담배꽁초는 폭우 때 하수구를 막아 도로를 물바다로 만든다. 강과 바다에 들어가면 유해물질이 나와 야생동물에게 피해를 준다. [중앙포토]

배수구 안에 빼곡한 담배꽁초는 폭우 때 하수구를 막아 도로를 물바다로 만든다. 강과 바다에 들어가면 유해물질이 나와 야생동물에게 피해를 준다. [중앙포토]

거리를 걷다 보면 흡연자들이 피우고 버린 담배꽁초가 자주 눈에 띈다. 하수구 구멍, 빗물받이에는 담배꽁초가 수북하다. 보기에도 안 좋지만, 여름철 폭우라도 쏟아지면 주변을 물바다로 만들기도 한다. 지난달 28일 국회에서는 “길거리 담배꽁초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문진국(자유한국당) 의원이 주최하고, 에코맘코리아가 주관한 토론회가 열렸다. “담배꽁초는 단순한 쓰레기가 아니라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되는 유해 폐기물”이란 지적이 나온 이 날 토론회를 정리했다.

전 세계 연간 4조 개 버려져 #필터는 솜이 아닌 플라스틱 #‘꽁파라치’ 8600만원 벌기도 #3차·층간 흡연도 피해 낳아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 담배 판매량의 3분의 2가 담배꽁초로 버려지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연간 6조 개비의 담배가 생산돼 이 중 4조개의 담배꽁초가 버려지는 셈이다. 지난해 국내에서는 34억7000만 갑, 약 700억 개비의 담배가 판매됐다. 3분의 2가 버려진다고 보면 460억 개 이상의 담배꽁초가, 서울시에서만 연간 87억 개의 담배꽁초가 버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 해양환경단체인 해양보존센터(Ocean Conservancy)에 따르면, 지난 32년간 전 세계 해변에서 수거한 해양 쓰레기의 3분의 1이 담배꽁초였다. 한국해양구조단이 지난해 1~9월 전국 32곳의 해변과 해저에서 수거한 쓰레기 중에 21%는 담배꽁초가 차지했다. 플라스틱 빨대를 줄이자는 캠페인이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으나, 정작 빨대는 해양폐기물의 0.02%를 차지할 뿐이다. 플라스틱 봉지나 플라스틱병보다 담배꽁초가 훨씬 심각한 문제다.

‘학교 주변 금연 거리’로 시범 지정된 서울 노원구 한 초등학교 앞을 시민이 걷고 있다. [연합뉴스]

‘학교 주변 금연 거리’로 시범 지정된 서울 노원구 한 초등학교 앞을 시민이 걷고 있다. [연합뉴스]

하천과 바다로 들어간 담배꽁초는 미세플라스틱으로 변해 호수와 해양 생태계까지 파괴하고 있다. 담배 필터는 흰 솜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셀룰로스 아세테이트’로 만들어져 있고, 가느다란 플라스틱 섬유를 포함하고 있다. 필터 하나에 1만2000개의 가는 섬유가 들어있다. 셀룰로스 아세테이트 자체는 자연계에서 아주 느리게 분해된다. 빨라야 18개월, 길면 분해되는 데 10년 이상 걸린다.

담배꽁초에는 독성물질이 들어있다. 담배 필터가 타르 등 담배 연기 속의 해로운 물질을 걸러내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피우고 버려진 담배 필터에는 당연히 유해물질이 들어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담배 내 7000가지 화학물질이 필터를 통해 환경에 유출되는데, 그중 50가지는 발암물질”이라고 지적했다. 버려진 필터 하나에는 5~7㎎의 니코틴(전체 담배의 약 25%)이 들어있다. 담배에는 타는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화학물질을 첨가하기도 한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실험에서 물 1L에 담배꽁초 하나를 96시간 동안 담가 유해물질이 녹아 나오도록 한 다음, 그 물속에 민물고기 또는 바닷물고기를 넣었더니 반 이상이 죽었다.

환경부는 1993년부터 담배꽁초의 처리를 위해 담배 제조·수입업체에 폐기물 부담금을 물리고 있다. 폐기물 부담금은 1개비당 1.225원꼴이다. 생산자는 이 정도 폐기물 부담금을 납부하면 담배꽁초 폐기물 처리 책임이 면제된다. 폐기물 부담금은 환경개선 특별회계로 편입돼 환경부 예산으로 사용되지만, 실제 담배꽁초 폐기물을 관리해야 하는 것은 지자체다.

홍수열 소장은 “담배꽁초 관리를 위해서는 국내에서도 생산자 책임 재활용(EPR) 제도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고, 불법 투기를 억제하기 위해 신고포상금 제도, 즉 이른바 ‘꽁파라치’ 제도라도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꽁파라치’가 있었던 2001년 전북 전주시의 장 모씨는 담배꽁초를 버리는 차량 운전자 2000여 명을 촬영, 한 해 동안 8600만원을 벌기도 했다. 하지만 포상금 연간 한도를 100만원으로 제한하면서 ‘꽁파라치’는 사라졌다.

경기도 간접 흡연 피해정도 통계

경기도 간접 흡연 피해정도 통계

담배꽁초뿐만 아니라 담배 연기도 환경문제를 일으킨다. 직접 담배를 피우지 않더라도 옆 사람이 피는 담배 연기에 노출되는 간접흡연, 즉 담배 연기로 오염된 공기에 노출되는 간접흡연은 건강에 피해를 준다. 야외에서도 흡연자에서 2.6m 떨어진 곳에서 측정한 미세먼지 농도가 70% 상승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WHO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매년 700만 명이 흡연으로 인해 사망하고, 그중 89만 명은 간접흡연이 원인이다.

담배 연기에서 배출된 유해물질은 실내 벽이나 가구, 사람의 피부·머리카락·옷에 들러붙어 있다가 천천히 공기 중으로 다시 날라 나온다. 이런 상황은 직접 담배 연기에 노출되는 간접흡연과 구별해 ‘3차 흡연’이라고 한다. 특히, 임신한 여성이 3차 흡연에 노출되면 태아의 폐 발달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013년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 국립연구소 연구팀은 담배 연기 잔류성분인 니트로자민(nitrosamine)이 사람 세포 속 DNA를 상하게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아파트 ‘층간 흡연’도 문제가 된다. 아파트 통로나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면 다른 집으로 담배 연기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부터는 ‘공동주택관리법’이 개정돼 층간 흡연에 대한 규제가 시행되고 있다. 피해자가 아파트 관리 주체(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층간 흡연을 신고하면, 관리 주체가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가해자’에게 간접흡연이나 금연 조치를 권고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세대 안까지 들어가 조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고, 가해자가 파악돼도 강제 조항이 없어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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