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빅딜 압박에 北'완전한 비핵화'+'단계적 비핵화', 입장정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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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28일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북한의 모든 핵시설과 대량 살상무기(WMD)를 한꺼번에 폐기해야 한다는 미국내 ‘빅딜’ 요구가 이어지는 가운데 북한이 12일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밝혔다.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11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카네기재단 핵정책 국제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이광조 JTBC 카메라기자]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11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카네기재단 핵정책 국제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이광조 JTBC 카메라기자]

대남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새 세기의 요구에 맞는 (북미) 두 나라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고 조선반도(한반도)에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완전한 비핵화에로 나가려는 것은 우리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앞으로도 (미국과) 긴밀히 연계해 나가며 하노이 수뇌회담에서 논의된 문제해결을 위한 생산적인 대화들을 계속 이어나가기로 하시였다”고 전했다. 다른 선전매체인 ‘조선의 오늘’도 외무성 부원 필명으로 같은 내용을 담은 ‘우리의 확고한 입장’ 제목의 글을 실었다. 하노이 북ㆍ미 정상 회담이 결렬된 이후 북한 매체들이 ‘완전한 비핵화’ 입장을 밝힌 건 처음이다.

하노이 정상회담 다음날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이런 회담을 계속해야될 필요가 있을 것 같지 않다”고 하면서 북한이 대화의 틀을 깨는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었다. 하지만 이날 북한이 밝힌 비핵화 입장은 하노이 회담 이후 열흘이 넘는 기간 동안 내부적으로 향후 대응 방침을 정한 것일 수 있어 주목된다. 비록 온라인 선전매체를 통한 것이기는 하지만 북한이 비핵화 입장을 피력한 건 미국과 대화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뜻을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단, 북한이 대화의 판을 깨지 않으면서도 ‘단계적 비핵화’라는 기존의 입장을 다시 한번 내비침으로써 미국이 요구하는 ‘빅딜’에는 응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등 미국내 주요 인사들이 ‘빅딜’을 조건으로 내걸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단계적 비핵화’로 맞받아치고 있는 것이다. 통일신보는 전날 ‘옳은 주견과 배짱을 가지고 임하여야 한다’ 제목의 글에서 미국에 제안한 ‘영변 폐기와 일부 제재 해제’안을 언급하며, “(양 정상이)새로운 상봉을 약속하시며 작별인사를 나누시었다”라면서도 “두 나라 사이의 신뢰조성과 단계적 해결원칙에 따라 가장 현실적이며 통 큰 보폭의 비핵화 조치”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 당국자들은 정치적 반대파들의 부당하고 파렴치한 주장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주견과 배짱을 가지고 조미관계의 새 역사를 개척하며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바라는 인류의 기대에 부응하는 길로 나와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미국과 북한 모두 대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비핵화 방식에 있어선 여전히 평행선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양측은 하노이 회담을 앞둔 실무협상에서도 비핵화 범위와 상응조치에 대한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채 정상간의 담판으로 미뤘다가 회담이 결렬됐다. 양측이 장외에서 대화의 의지를 피력하고 있는 건 긍정적인 요소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지난 1월 31일 단계적ㆍ병행적 비핵화라는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며 이견의 폭을 좁히려 했던 비건 대표마저 빅딜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며 맞선 모양새여서 대화의 장이 만들어지는데 상당한 밀고 당기기가 이어지면서 지체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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