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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대통령 일정까지 바꾼 무소불위 민노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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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7일 서울 종로구 경사노위에서 위원회의 의사결정 구조와 위원 위촉 등 운영 방식에 대한 기자회견을 마치고 회견장을 떠나고 있다. 경사노위는 이날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제2차 본위원회를 열 예정이었지만 근로자위원 3명이 불참하면서 무산됐다. [뉴시스]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7일 서울 종로구 경사노위에서 위원회의 의사결정 구조와 위원 위촉 등 운영 방식에 대한 기자회견을 마치고 회견장을 떠나고 있다. 경사노위는 이날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제2차 본위원회를 열 예정이었지만 근로자위원 3명이 불참하면서 무산됐다. [뉴시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결국 결정 장애에 빠졌다. 노동계 인사들이 집단행동으로 회의를 파행시켰기 때문이다.

탄력근로 확대 합의안 의결 무산 #친민노총 위원들 집단 불참한 탓 #청와대 “유감” … 위원 해촉도 거론 #결국 경사노위 결정장애만 노출

경사노위는 7일 본위원회를 열어 탄력근로제 확대 합의문, 한국형 실업부조를 담은 사회안전망 강화 방안 등을 의결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한국노총을 제외한 노동계 위원 3명이 집단으로 불참했다. 의결은 무산됐다.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서다.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노사단체의 결단을 발판 삼아 큰 타협을 이뤘음에도 일부에 의해 전체가 훼손되는 현재의 상황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청와대도 강한 유감을 표했다. 한정우 청와대 부대변인은 “대통령 자문기구의 위원으로서 사회적 대화와 타협을 원하는 국민의 뜻에 따라 참석했어야 함에도 역할과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고 말했다. 이런 결과는 예견됐다(중앙일보 1월 30일자 14면). 경사노위와 청와대가 애써 외면했을 뿐이다.

지난 1월 28일이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대의원 대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경사노위법을 개정할 때 우리의 요구사항을 반영했다. 노사정 위원 가운데 부문별 위원이 절반 이상 참여해야 의결된다. 우리가 동의하지 않으면 의결 못 한다”고. 불출석 제도를 이용해 민주노총 뜻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말이 한 달여 만에 현실화했다. 본위원회에 불참한 3인은 지난해 6월 경사노위법이 개정되면서 청년과 여성, 비정규직 계층을 대표한다며 위촉한 인사다. 청년유니온·여성노조·비정규센터 소속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민주노총과 호흡을 같이하는 경향이 강한 단체”라고 말했다. 김명환 위원장의 말이 허언이 아니었던 셈이다.

민주노총은 탄력근로제 확대에 반대하고 있다. 이를 이유로 6일 총파업을 했다. 비록 3200명만 참여하며 산업현장에선 힘을 잃었지만 국가 기구인 경사노위에선 노동단체와의 연대로 강력한 위력을 과시한 모양새가 됐다. 본위원회에 참석할 예정이던 문재인 대통령의 일정까지 바꿨으니 말이다. “결과적으로 민주노총의 판막음이 된 꼴”(경제단체 관계자)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계층별 위원의 대표성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무늬만 청년·여성·비정규직 계층의 대표이지 예전의 노사정 체제와 달라진 것이 없어서다. 노동·경제단체 입맛대로 계층 대표를 선정하는 체계상 오류가 이번 사태를 불렀다는 얘기다.

경사노위는 이제야 운영상 허점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문 위원장은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의사결정 구조와 위원 위촉 등 운영방식에 대해 근본적인 대안을 검토하고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박태주 상임위원은 “필요할 경우 법 개정까지도 포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노총에 휘둘리는 왝더독(Wag the Dog,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 사태를 방치할 수 없다는 뜻이다.

문 위원장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11일 본위원회를 다시 연다. 그때도 안 나오면 세 번의 기회를 주고, 특단의 조치를 취할 방침”이라며 “그냥 간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경사노위법이 바뀌지 않는 한 의결은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경사노위에선 “필요하면 위원 해촉과 같은 강력한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는 뜻”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사회적 합의를 도출한 한국노총은 난처해졌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민주노총을 겨냥해 “반대만 하는 노조는 무책임의 극치”라고 비판했다. 그런데 노동계 위원이 사실상 민주노총 편을 들며 합의문 의결을 무산시켰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대통령이 참석하는 회의를 압박을 가해 무산시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불참한 위원들을 설득해 차기 본위원회는 차질없이 열리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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