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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던 교통사고 피해자···알고보니 '보험 사기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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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4일 서울 중랑구의 한 이면도로에서 이모씨가 주차하던 흰색 차량을 걷어찬 뒤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 성동경찰서]

지난달 14일 서울 중랑구의 한 이면도로에서 이모씨가 주차하던 흰색 차량을 걷어찬 뒤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 성동경찰서]

지난달 14일 서울 중랑구의 한 이면도로에서 주차하던 K씨(29)는 '쿵' 소리를 듣고 차를 세웠다. 골목에서 나타난 이모(50대)씨는 차와 부딪혔다며 통증을 호소했다. K씨는 갑자기 나타나 사고를 주장하는 이씨가 의심스러웠지만 "몸은 괜찮다. 나중에 보험사에 접수해 달라"며 합의를 요구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의심을 거뒀다. 이후 K씨의 보험사는 이씨에게 보험금 450만원을 지급했다. K씨는 작은 접촉사고로 생각하고 사건을 잊었지만 최근 경찰을 통해 보험사기를 당한 사실을 알았다.

고의로 사고를 낸 뒤 합의금을 뜯어내는 보험사기가 진화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고의사고 사기범은 초보운전자나 여성을 상대로 가짜 사고를 낸 뒤 윽박질러 합의금을 받아낸다. 최근에는 현장에서는 운전자를 안심시키고 이후 보험금을 타내 의심을 피하는 수법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사고 직후 운전자에게 합의를 강요하던 방식에서 한 발 더 나간 수법이다.

서울 성동경찰서는 좁은 골목에서 후진하거나 서행하는 차량에 일부러 다리를 부딪치는 이른바 '발목치기' 수법으로 2017년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총 2700여만 원을 타낸 50대 남성 이씨를 지난달 26일 붙잡아 보험사기방지특별법 혐의로 입건했다고 6일 밝혔다.

이씨는 골목길에서 서서히 움직이는 자동차를 노렸다. 다가가 바퀴를 발로 차고는 "차에 부딪혔다"고 거짓말했다. 당황해하는 운전자에게 "당장은 몸이 괜찮으니 나중에 보험처리 해달라"며 현장을 떠났다. 운전자들은 별다른 의심 없이 이씨에게 보험금을 지급하고도 사기를 당했는지 인식도 하지 못했다.

지난달 14일 서울 중랑구의 한 이면도로에서 이모씨가 운전자 K씨가 주차하던 차량에 고의로 부딪힌 뒤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 성동경찰서]

지난달 14일 서울 중랑구의 한 이면도로에서 이모씨가 운전자 K씨가 주차하던 차량에 고의로 부딪힌 뒤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 성동경찰서]

경찰 조사를 피하며 범행을 이어가던 이씨는 1년 사이에 5차례 보험금을 타낸 것을 수상하게 여긴 보험사에 덜미를 잡혔다. 보험사의 신고를 받고 수사에 나선 경찰은 사기 피해자들의 진술과 이씨가 멈춰 선 차량에 발길질하는 폐쇄회로(CC)TV 영상을 바탕으로 그를 붙잡았다.

이 같은 고의사고 사기가 적발되면 보험사는 보험금을 돌려받기 위해 구상권 청구 소송을 제기한다. 하지만 대다수 사기범이 보험금을 써버리는 경우가 많아 돌려받기 쉽지 않다. 손해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기가 밝혀지면 보험가입자는 할증 같은 부담을 지지 않고, 보험사도 소송으로 보험금 받을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돌려받지 못한 보험금이나 소송 비용이 쌓이면 결국 피해는 보험사와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빠른 신고로 보험금이 지급되기 전에 사기를 잡아내는 게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경찰 역시 교묘해지는 고의사기 피해를 막기 위해 작은 사고라도 반드시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말한다. 성동경찰서 관계자는 "작은 사고가 나면 번거로워지는 걸 피하기 위해 경찰 신고를 하지 않고 보험처리만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하지만 인사 사고는 작은 경우에도 경찰에 신고해야 혹시나 발생할 고의사고를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남궁민·이가영 기자 namg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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