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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5G 요금 낮춰라’ 압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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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지난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19’ SK텔레콤 부스에서 관람객들이 5G기술로 구현한 소셜 VR을 체험하고 있다. [사진 공동취재단]

지난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19’ SK텔레콤 부스에서 관람객들이 5G기술로 구현한 소셜 VR을 체험하고 있다. [사진 공동취재단]

현재(LTE·4세대)보다 속도가 20배 빨라지는 5G시대가 되면 통신 요금을 얼마나 내야 할까. 3월 말 세계 최초 ‘5G 상용화’라는 국가적 과제에 가려져 있던 5G요금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SKT가 낸 ‘대용량 고가 요금제’ #중·소량 이용자 차별이라며 퇴짜 #업계 “데이터 많이 쓰는 게 5G” #거액 들여 망 깐 이통사들 고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5일 SK텔레콤이 신청한 5G 요금제 인가를 반려했다. 과기정통부는 “SKT가 신청한 5G 요금제가 대용량 고가 구간만으로 구성돼 있어 대다수 중·소량 이용자의 선택권을 제한할 우려가 크다”고 설명했다. 통신 요금 인가는 전문가 11명으로 구성된 이용약관심의자문위원회가 요금 적정성, 이용자 이익 저해 여부 등을 검토한다. 이통업계는 과기정통부가 에둘러 표현했지만 결국 ‘많은 요금을 내고 대용량 데이터를 쓰도록만’ 설계한 요금제를 낮추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과기정통부의 사실상 5G요금 인하 요구에 이통업계는 난감한 표정이다. 이동통신 요금은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만 인가를 받고, KT와 LG유플러스는 SK텔레콤의 인가 내용을 기준 삼아 유사 요금제를 신고한다. 따라서 과기정통부의 인하 요구는 SK텔레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SK텔레콤은 이번에 신청한 요금제가 ‘데이터 몇 기가바이트에 기본요금 얼마’인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5G에서는 고가 요금제 위주로 설계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다른 이통업계 관계자는 “5G에서는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같은 대용량 데이터 소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홀로그램을 예로 들었다. 각설탕 한 개 크기인 1㎤짜리 홀로그램이 차지하는 데이터 용량이 1GB(기가바이트, 1GB=1024MB)에 달한다. 2시간짜리 일반 동영상 파일(700MB)보다도 크다. 그는 “이런 대용량 데이터를 자유롭게 주고받기 위해 구축한 게 5G인데 저용량 요금제를 설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했다.

통신업계는 과기정통부가 SK텔레콤의 5G 요금제를 반려하고 보도자료까지 낸 것도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이통업계 관계자는 “요금제는 이통사와 과기정통부가 상시적으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조율한다”며 “과기정통부가 이례적으로 자료를 내고 논의과정을 외부에 공개하니, 이통사가 마치 폭리를 취하려 한 모양새가 됐다”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5G 요금에 대한 국민 관심이 높아 정보 공유 차원에서 보도자료를 냈을 뿐 다른 의도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은 최근 스페인에서 열린 ‘MWC 2019’에서 5G 요금제에 대해 “국민이 누려야 할 보편적 서비스인 통신의 경우 가계 부담이 너무 커지면 안 된다는 기조를 갖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통신 요금은 한 번 정하면 낮출 수는 있어도 올리기가 어렵고, 차세대 통신망 구축에 조 단위의 선투자비가 들어간다는 점도 이통사의 요금제 결정을 어렵게 하는 요소다. 익명을 원한 이통사의 한 관계자는 “거액을 들여 고속도로를 깔긴 깔았는데, 사실 차(데이터)가 얼마나 지날지 예측하기가 매우 힘들다”며 “투자비 회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정부가 요금제까지 간섭하는 건 지나친 측면이 있다”고 하소연했다.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통신요금이 가계 소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정부의 지적도 중요하지만 5G가 4차산업혁명의 근간이 된다는 점, 민간의 가격 결정은 자율이 원칙이라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며 “이통사의 가격 결정 권한이 과도하게 침해받지 않으면서도 국민이 5G를 누릴 수 있는 선에서 가격이 결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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