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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캐슬’의 꼭대기 서울의대, 배고픈 연구의사 키울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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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4호 02면

신찬수 서울의대학장

신찬수 학장은 서울의대가 단순한 임상의 교육기관을 넘어 사회적 기구로서 ‘사회적 소명’을 완수하는 교육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했다. [김경빈 기자]

신찬수 학장은 서울의대가 단순한 임상의 교육기관을 넘어 사회적 기구로서 ‘사회적 소명’을 완수하는 교육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했다. [김경빈 기자]

신찬수 서울의대 학장은 처음엔 인터뷰보다 세상 얘기를 듣고 싶어했다. JTBC 드라마 ‘SKY캐슬’이후 서울의대에 쏠린 세간의 관심, 특히 우리사회 피라미드의 정점, 특권층의 상징으로 낙인찍힌 데 대해 당황스럽다고 했다. 서울의대 입학을 위해 수십억원을 쓰고, 입시코디가 붙는다는 설정은 ‘설마 저럴까’ 싶지만 의외로 시민들이 크게 공감하는 걸 보면서 대학 내부에선 ‘우리도 빌미를 제공했다’는 반성론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우리가 그동안 좀더 우수한 학생을 뽑는 데에 열중한 만큼 잘 가르치는 데에도 최선을 다해 노력했을까라는 반성론도 많이 나왔죠.” 그러면서 물었다.

특권층 상징으로 낙인 #‘SKY캐슬’ 드라마에 시민들 공감 #우수 학생 뽑기에 전념한 것 반성 #학생들 연구보다 임상 #기초의학 파헤치는 연구의사 외면 #서울의대는 물론 전국서 10명 안 돼 #개학 120주년 새 비전 #공감능력 갖춘 사회적 의료인 양성 #건강사회문화 만들기에 주력할 것

“의대는 의사를 만드는 직업학교입니다. 그런데 이런 학교가 마치 사회권력의 정점인 듯 바라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내가 생각해낸 말은 이거였다. 과거 ‘권력엘리트 양성소’격이었던 서울법대가 없어지고 난 뒤 문과에선 그 뒤를 이은 경제·경영학과의 경우 SKY대학이 대략 평준화 되어 ‘대한민국 원톱’을 세울 근거가 취약해진 반면, 공부 제일 잘 하는 학생들을 가파르게 줄세우기 하는 의대들 중 1등인 서울의대가 과거 서울법대에 쏟아진 관심을 흡수해버린 것은 아닌지. 또 이 시대 권력이 ‘돈’으로 환치되면서 ‘돈을 제일 잘 벌 가능성이 큰 전문직’인 의사가 가장 촉망받는 직업으로 떠오른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신 학장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바로 그 부분, 돈 잘 버는 의사를 지향하는 바깥의 시각과 우리가 지향하는 서울의대의 미래 모습은 완전히 괴리돼 있어요. 우리가 원하는 서울의대인의 미래는 배고프고 힘든 ‘연구의사’와 병들기 전에 건강하게 만드는 ‘사회적 의료인’을 양성하려는 것인데, 실은 학생과 학부모들도 이 방향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신입생 설명회에 학생 135명, 부모는 190명

새로운 비전이 구체적으로 뭐죠.
“올해가 이 땅에 서울의대 전신이라 할 국립의학교육기관이 생긴 지 120주년 되는 해입니다. 이를 기점으로 우리는 새로운 미래 비전을 만들고 있어요. 그 주된 내용이 ‘사회를 고치는 의사’와 ‘글로벌 공헌’입니다. 즉 시민 전체의 건강권을 지키는 건강사회문화를 만들고, 이런 방향으로 국내 보건 및 의료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졸업생들도 기자, 법조계, 제약 등 다양한 영역으로 진출했으면 합니다. 또 임상 의사 한 명은 수천 명의 환자를 살릴 수 있지만, 연구를 통해선 수백만 수천만 명의 인류가 혜택을 봅니다. 의학 연구자가 되는 것이야말로 의사로서 글로벌하게 공헌하는 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의대 하면 ‘연구하는 의사’를 떠올리는데 실제론 그렇지 않나요.
“물론 연구하는 선생님들이 많죠. 또 졸업생의 4분의3이 전국 대학 교수로 나가있을 만큼 ‘의사를 가르치는 의사’를 지향하는 성격이 강합니다. 여기에 이제 우리는 임상의나 교수보다 기초의학 등을 평생 연구하는 평생의학자로 남는 길을 신 비전으로 제시하는 것입니다. 과거 내가 의대를 나올 무렵(81학번)만 해도 우리 대학 200명 중 10명 정도는 기초의학을 연구하는 연구의사로 남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전국에서 10명도 지원을 안 합니다.”
서울의대생도 마찬가지입니까.
“마찬가지입니다. 거의 다 임상을 지원한다고 보면 됩니다. 학생들은 정책이나 시장흐름에 대단히 민감해요. 그래서 수가 정책이 바뀌면 그에 유리한 과에 레지던트 지원자가 확 몰립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은 과로 몰린다는 얘기군요. 거기엔 부모님들이나 주변의 기대 같은 외부적 영향도 있지 않을까요.
“학부모님들의 과잉기대감도 학생들이 극복해야 할 과제 중 하나일 겁니다. 이번 신입생오리엔테이션을 했는데 학생 135명에 학부모는 190명이 왔더군요. 그 정도로 부모님의 관심이 높습니다. 또 학생담당 부학장은 일과가 거의 학부모들의 전화를 받는 걸로 시작하고 끝이 날 정도입니다. ‘학교 구내식당 음식이 왜 그러냐’ ‘학교에서 어떻게 가르치기에 우리 애 성적이 나쁘냐’ ‘우리 애가 요즘 게임을 많이 하는데 관심을 가져라’ ‘동아리에서 술을 먹지 못하도록 단속해라’ 등 학생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보이고, 요구합니다. 이런 과잉 관심은 학생들에게 분명히 영향을 미치겠죠.”
서울의대 본과 3학년생들이 임상실습 전에 가운을 입는 ‘가운식’을 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서울의대 본과 3학년생들이 임상실습 전에 가운을 입는 ‘가운식’을 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최근 서울의대의 의사국가고시 합격률이 낮은 사례 등을 들어 ‘과외와 스펙만들기로 들어간 아이들’의 실제 실력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80%대의 합격률을 보인 해도 있었죠.
“의사시험은 면허를 주기 위해 붙이려는 시험이지 떨어뜨리려는 시험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 합격률은 전국평균(94~95%)과 비슷합니다. 요즘은 학교에서 모의고사를 보고 위험한 학생들에겐 특별공부까지 시킵니다. 원인은 다 같지 않습니다. 부모에게 등 떼밀려 와서 공부에 흥미를 못 느끼는 학생도 있고, ‘내가 서울의대생인데’하는 허황한 자신감으로 공부를 안 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정말 우수하고, 연구자로서의 가능성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에게서 연구자로서의 가능성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나요.
“우리는 본과 2학년에 10주간 교수 연구실로 들여보내 연구를 하도록 합니다. 이 과정이 끝나고 발표회를 하면, 생각지도 못한 관점으로 연구를 하고 결과를 내놓는 학생들이 꽤 많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연구의사로 갈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려고 여러 방안을 생각중입니다.”
연구의사 시스템이란 게 어떤 겁니까.
“모두 레지던트를 지원하니 일단 레지던트가 끝나고, 학위과정을 다시 밟도록 하는 방안 ‘4(레지던트)+4(학위과정)’과정을 추진 중입니다. 미국에서는 의과대학원(4년 과정)에서 ‘2(의대)+3(연구)+2(의대)’ 과정으로 7년을 이수한 후 연구의사가 되도록 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학자들이 많이 나오죠. 우리는 학위 4년 과정 안에 전문연구요원으로 군대 대신 복무하게 하는 제도를 도입한다면 많은 성과가 있을 걸로 보입니다. 또 의대 6년 과정과 함께 7년제 학석사 과정을 도입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지요.”
서두에서 연구의사는 배고픈 직업이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임상으로만 가려는 학생들이 시스템만 갖춘다고 갈까요.
“연구는 어렵죠. 성과는 잘 안 나오고, 실패확률은 높고, 사회적 인식도 낮죠. 연구에 대한 높은 동기와 함께 자기를 관리하고 실패를 견디는 능력이 절대 필요하고, 무엇보다 자기주도 학습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학생들 중엔 학원과외와 부모의 스케줄 관리에 익숙하고, 실패의 경험 없이 모범생으로만 살아온 친구들이 많습니다. 남이 닦아준 고속도로만 달리던 사람은 이런 험로에선 낭패를 볼 수 있죠. 사교육 문화, 자기주도학습능력을 키우기 힘든 고교교육 등이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이젠 ‘사회적 의료’얘기를 해보죠.
“우리 대학은 6년 전부터 사회정책실을 만들고, 질병치료가 아닌 전 국민이 평등하게 건강을 유지하도록 하는 ‘건강평등권’에 대한 개념을 세우고, 관련 정책을 만드는 데 의견을 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중앙SUNDAY와 함께 건강사회문화 만들기 캠페인을 벌이는 것도 ‘사회적 의료’에 대해 대학 안에서만 연구할 게 아니라 이젠 범사회적으로 확산할 단계가 됐다는 생각에서입니다. 건강사회를 만드는 일은 의료인들이 사회의 여러 주체들과 협력해야만 이루어낼 수 있는 일입니다.”

실제로 서울의대는 올해부터 중앙SUNDAY와 건강사회문화 캠페인의 첫 사업으로 ‘기업의 건강사회공헌지수 평가’사업을 함께 한다(2월2일자 본지 14면 참조). 모든 국민이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사전 예방과 건강환경 조성이 필요한데 현대사회에선 기업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직장에서 절대적 시간을 보내는 직원들의 건강, 기업 상품을 소비하는 소비자의 건강, 지역사회 환경 등을 개선하려면 기업들의 참여와 각성이 먼저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레지던트 4년+학위과정 4년’ 방안 추진

의료인의 사회참여와 사회적 책임의 고취는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항간엔 의대생 중엔 이기적이고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 많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의사의 ‘사회적 책임’에 학생들이 공감하나요.
“공감능력과 사회성을 기르기 위해 우리는 몇 년전부터 예과 단계에서 철학 등 인문학 과정을 몇 과목 이상 필수로 이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히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우리 학교가 사회 참여에 얼마나 적극적이었는지를 발굴해 역사의식을 고취하려고 합니다.”
3.1운동에서 서울의대가 큰 역할을 했다는 말씀인가요?
“우리 학교 전신인 경성의전이 가장 격렬하게 3.1운동에 참여한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총독부자료를 보면 3.1운동 당시 구금된 학생들 중 경성의전 학생이 31명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그 뒤로 경성고보(22명), 보성고보(15명) 순이지요. 1919년 당시 경성의전 조선인학생 141명 중 79명이 퇴학을 당했고, 그 중엔 임정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한 분도 계십니다. 우리는 25일 학교에서 이런 역사를 되새기는 세미나를 열고, 학생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헌신해온 선배들의 역사를 가르칠 생각입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교육적 변화를 시도해보면서 우리 사회가 생각하는 특권층 교육기관이 아닌 사회적 헌신의 리더십을 기르는 학교로 거듭나는 방법을 모색해 보려고 합니다.”

의과학 연구 분위기 조성에 강한 집념

신찬수 학장의 말엔 정치적 수사가 없었다. 학생이나 학교의 문제를 지적할 때도 에두르거나 꾸미지 않고 담백하고 솔직해 편하기도 했지만 놀랍기도 했다. 그는 학장 취임 초기부터 ‘서울의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강조했다. 또 실패할 확률이 높은 장기 연구를 하는 ‘의과학 연구자’들이 연구할 수 있는 학교 분위기 조성에 누구보다 집념이 강한 걸로도 유명하다. 1987년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1995년부터 서울의대에서 내분비내과학 교수로 일하고 있다. 기획실장, 교무부학장 등 주요 보직을 거쳐 2017년 12월 60%대의 압도적 지지로 서울의대 학장에 올랐다.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sun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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