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장애인 은사와 '아름다운 산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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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전 9시 한라산 어리목 등반로에는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된 스승과 제자들이 엮어내는 훈훈한 감동이 넘쳐흘렀다.

1997년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된 김성배(57)씨가 70~86년 제주관광고(구 제주농고) 전자과 제자들과 함께 한라산 등반에 나선 것이다.

교직을 떠난 뒤에도 휠체어를 타고 운동하는 등 매사에 적극적이었던 金씨는 지난 6월 오랜만에 찾아온 제자들에게 "휠체어를 타고 한라산에 한번 오르고 싶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몇몇 제자들이 동참할 계획이었지만 이런 계획이 알려지면서 73년 졸업한 전자과 1기생부터 86년 전자과가 없어져 마지막으로 졸업한 14기생까지 1백명이 넘는 제자들이 산행에 동참, 金씨의 재활 의지에 힘을 보탰다.

또 암투병 때문에 올해 초 명예퇴직한 현시종 선생님과 표선상고 고병윤 교장 등 전자과 스승 9명도 이날 '아름다운 산행'에 동참했다.

金씨는 "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고 다른 장애우들에게 귀감이 되고 싶어 제자들에게 산행을 제안했는데 이렇게까지 제자들의 관심이 뜨거울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교대로 휠체어를 미는 제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불렀고, 제자들도 학창시절의 추억을 되새기며 덕담을 주고받았다.

등반대회장 한석인(49.전자과 2기 졸업)씨는 "은사와 제자의 만남처럼 소중하고 감동적인 만남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은사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큰 기쁨과 교훈을 준다는 것을 오늘 행사를 통해 실감했다"고 말했다.

고병윤 교장은 "9월 28일은 제주 출신 해병대원이 수복된 중앙청에 태극기를 꽂았던 날"이라며 "오늘은 우리들이 한라산에 꿈의 깃발을 꽂는 날"이라고 격려했다.

이날 낮 12시 한라산 해발 1천7백m 윗세오름에서는 스승과 제자들의 만세삼창이 골짜기를 타고 메아리로 울려퍼졌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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