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 망신을 불러온 ‘필리핀 불법 수출 플라스틱 폐기물’ 중 일부가 설 전인 지난 3일 평택·당진항을 통해 국내로 들어왔다. 하지만 문제의 폐기물을 수출한 경기도 평택시 내 G폐기물종합재활용업체 측은 반입한 폐기물의 처리에 소극적이라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을 투입해야 할 상황이다.
환경부와 그린피스 등에 따르면 지난 3일 오전 6시30분쯤 불법 플라스틱 폐기물 1200t을 실은 스펙트럼N호가 평택·당진항에 입항했다. 필리핀 오로항을 출항한 지 21일 만이다. 반입된 폐기물 1200t은 G업체가 지난해 7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필리핀으로 수출한 6300t 중 오로항 컨테이너 51대에 나눠 보관해왔던 것들이다. 하역작업은 이날 이뤄졌다.
환경부와 평택세관은 합동으로 7일 평택항에서 반입 폐기물에 대한 현장조사를 벌인다. 이후 소각 등 처리방향을 정할 계획이다. 하지만 G업체가 폐기물 처리에 ‘나 몰라라’하는 상황인 데다 처리비용 부담 문제를 놓고 환경부와 평택시·경기도 간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아 실제 폐기물 소각까지는 수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우려된다.
평택시 관계자는 “G업체가 자진해서 폐기물을 처리하도록 할 계획이지만, 쉽지 않다”며 “행정기관에서 대집행을 통해 폐기물을 처리할 경우 예산 부담문제가 발생해 환경부, 경기도 등과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집행은 행정기관으로부터 받은 명령을 따르지 않을 때 행정기관이 직접 행위를 대신하는 것이다. 비용은 대집행이 이뤄진 뒤 명령을 받았던 해당 업체 측에 청구된다.
결국 시민이 낸 세금으로 우선 폐기물을 처리한 뒤 G업체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안이 현재로써는 유일하다. 환경부는 이미 국내로의 반입 비용 4만7000달러(한화 5270만원)를 부담했다. G업체가 환경부의 반입 명령을 위반한 데 따른 지출이다. G업체는 평택·당진항에 쌓여 있는 폐기물의 처리 비용도 부담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현재 필리핀 현지에 남아 있는 5100t의 나머지 폐기물 등의 반입·처리 비용까지 더하면 수억 원의 예산이 쓰일 것으로 보인다. 이에 G업체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했지만 닿지 않았다.
한편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필리핀 불법 수출 폐기물이 반입된 지난 3일 평택·당진항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며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량을 규제할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김미경 그린피스 팀장은 “한국발 불법 플라스틱 쓰레기를 조속히 환수하고, 국내에 불법 방치된 플라스틱 쓰레기 전수조사와 방지대책 마련에 나선 정부의 조치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환경부가 플라스틱 소비량 감축의 필요성에 공감한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 각 기업의 일회용 플라스틱 소비량을 조사하고, 소비 감축 목표, 로드맵, 생산자책임 확대 등 실효성 있는 정책과 규제를 제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평택=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