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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윽하고 향기로운 김서령의 음식 산문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21호 20면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김서령 지음
푸른역사

단단한 글에서는 향기가 난다. 미사여구가 없어도 생기발랄하고, 무심한 듯해도 온기가 있다. 김서령의 글이 그렇다. 지난해 가을 그가 투병 끝에 세상을 하직했을 때, “한 문장이 졌구나”라는 탄식이 나올 정도로 그의 글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가 그동안 음식에 관련해 썼던 글들을 모은 이 책에는, ‘조선 엄마의 레시피’라는 부제대로, 경북 안동에서 어머니와 동네 처녀·할매들과 어린 시절을 보낸 저자의 추억이 푹 고아낸 곰탕처럼 진하게 녹아있다. 세밀한 관찰을 또렷한 기억으로 살려내고 이를 구수한 우리말로 적확하게 그려내는 저자의 재주는 놀랍다. 속 깊은 생각과 삶을 꿰뚫는 통찰까지 더해져 같은 문장을 읽고 또 읽게 만든다.

배추에 밀가루를 묻혀 들기름에 구워낸 배추적이 가진 ‘깊은 맛’을 설명하기 위해 ‘얕은맛’을 끌어들이는 대목을 보자. 그에게 ‘얕은맛’은 “혀에서만 단, 달게 먹고 난 후엔 조금 민망해지는 간사한 맛이다. 어쩌면 살짝 ‘죄’의 냄새가 깃든! 식욕이되 성욕과도 흡사하게 허망하고 말초적인 맛”이다. 반면 깊은 맛은 “먹고 나서 전혀 죄스럽지 않다. 혀가 아니라 위가 느끼는 맛이며, 나이 들어야 제대로 아는 맛이다. 마치 여자들이 아이를 낳고 난 후에야 미역국의 맛을 제대로 아는 것처럼!”이라고 말한다.

방앗간에서 마른 고추 수천 개를 한꺼번에 빻아 만든 고춧가루와 부뚜막에 말려 놓았다가 손으로 비벼낸 부빈 고추의 차이를 설명하는 대목은 또 어떤가. “맑은 국엔 수더분한 촌아낙처럼 어물쩡한 고춧가루가 아니라 귀부인처럼 쌀쌀맞고 도도한 부빈 고추를 써야 제격”이라는 지론은 먹거리에 쇠(칼)는 최대한 대지 말고 손을 이용해 결대로 잘라 먹었던 조상들의 음식론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하여 이 책은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쉽게 읽기 싫은 책이다. 곁에 놓아두고 조금씩 야금야금 읽어야 하는 책이다. 그러다 보면 저자의 표현대로 “뱃속에선 절로 웃음이 풍풍 솟”을지도 모를 일이다.

정형모 전문기자/중앙 컬처&라이프스타일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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