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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노트] "초대권 안 뿌리겠다" 비장한 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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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초대권은 연극계 뿐만 아니라 공연계 전체의 너무나도 오랜, 그래서 이젠 식상하다시피한 고질병이다. 그런데 왜 굳이 이 시점에서 성명서까지 내놓았을까. "차마 두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기에"라는 설명이다. 극단 사다리 정현욱 대표의 증언. "지난주 대학로 소극장 무대에 'P'란 연극이 올라갔어요. 200석 남짓한 객석에 달랑 30명만 들었죠. 그나마 돈을 낸 사람이 한 명도 없이 몽땅 '초대'더라구요. '100% 공짜 공연'이란 것에 너무 자존심이 상했는지, 연출자가 아는 사람 한명에게 '제발 너라도 표 좀 사달라'고 부탁해 한 명의 유료 관객과 29명의 무료 관객을 앞에 두고 공연을 했죠. 우리끼린 요즘 '유료 20%를 넘기면 대박'이란 말까지 오갈 정도입니다."

온갖 원성과 한탄에도 불구하고 초대권은 왜 남발될까. 가장 큰 부분은 마케팅 대체 비용이다. 극단들은 자금이 넉넉하지 못한 탓에 공연정보 포털사이트 등에 배너 광고를 올리면서 돈 대신 초대권을 준다. 문제는 계약이 '초대권 **장'으로 명확하지 않은 채 고무줄처럼 줄었다 늘었다 한다는 것. 때론 한 회 공연에 100명이 넘는 사람이 초대권을 들고 오기도 한다. 공연기획사 이다의 오현실 대표는 "이렇게라도 본 관객이 다시 오길 바라는 마음에 초대권을 후하게 내놓았지만, 그들은 너무나 공짜에 길들여져 버렸다. 우리가 무덤을 판 격"이라고 토로했다.

극단들끼리 서로 눈 감은 채 돈을 안 내고 연극을 보는 풍토도 무시 못할 요인이다. 평론가.대학교수.연극계 원로 등에 대한 예우도 '초대권 문화'의 일부로 자리잡았다. 미풍양속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들에게 자칫 잘못 보였다가 각종 기금 지원 사업에서 피해를 볼 수 있는 현실 때문이다. "더이상 이것 저것 눈치 볼 형편이 못됩니다. 당장 극단이 문을 닫게 생겼는데요. 뼈를 깎는 각오로 초대권을 뿌리 뽑아야죠." 이들의 비장한 결의가 관철되길 기대해본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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