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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저에 빠져 팽창 멈춘 한국, 5년 후 수축사회 진입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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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0호 10면

[배명복의 사람속으로] 홍성국 전 미래에셋대우 대표

홍성국 전 대표는 ’1차 베이비붐 세대의 막내인 63년생이 대규모로 은퇴하는 2023년이 되면 한국도 본격적인 수축 국면에 진입할 것“이라며 사회복지가 최대 이슈로 부상 할 것으로 전망했다. [강정현 기자]

홍성국 전 대표는 ’1차 베이비붐 세대의 막내인 63년생이 대규모로 은퇴하는 2023년이 되면 한국도 본격적인 수축 국면에 진입할 것“이라며 사회복지가 최대 이슈로 부상 할 것으로 전망했다. [강정현 기자]

한 치 앞도 못 보고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삶이다. 그래도 국가와 사회를 책임진 리더들은 달라야 한다.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앞을 내다볼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넓고 길게 볼 수 있는 리더 그룹이 없는 국가와 사회는 불행하다. 쇠락(衰落)의 길을 벗어나기 어렵다.

팽창서 수축사회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분기점 #세계 각국 파이 더 이상 커지지 않아 #복합 전환 현상 #환경 오염·인구 감소로 성장 지체 #각자도생 위한 제로섬 게임 한창 #사회적 자본 중요 #양적 성장만 강조해 불신·갈등 팽배 #욕망 조절하고 이타적 마음 필요 #국가 리더의 역할 #최소 10년은 내다보고 미래 준비 #교육 시스템 바꾸고 외교 격 높여야

수축사회

수축사회

이번 주 중앙SUNDAY 인터뷰에 초대한 손님은 홍성국(56) 전 미래에셋대우 대표이사·사장이다. 얼마 전 『수축사회』란 책을 출간해 화제가 된 인물이다. 그는 인류가 처한 현재 상황을 팽창사회에서 수축사회로 넘어가기 직전의 과도기로 진단한다. 르네상스 이후 약 500년간 지속해온 팽창사회가 끝나고, 조만간 세계가 본격적인 수축 국면에 진입한다는 것이다. 이런 거시적 상황 인식을 토대로 우리 사회 리더들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책을 썼다고 한다. 정치·경제·사회 시스템은 물론이고 개인의 사고와 생활 방식도 수축사회에 맞게 혁명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지난 21일 서울 서소문로 중앙일보 본사에서 홍 전 대표를 만났다.

4차 산업혁명이 수축사회 돌파하는 활로

책을 안 읽은 독자들을 위해 우선 수축사회가 뭐고, 왜 수축사회인지 설명해 달라.
“플러스섬 게임이 가능했던 팽창사회의 타성에 젖어 우리는 파이가 계속 커지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하지만 2008년 9월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파이는 성장을 멈췄다. 지난 10년간 세계 각국이 온갖 무리수를 동원했음에도 파이가 더 이상 커지지 않자 국가끼리, 또 공동체 구성원끼리 서로 뺏고 빼앗기는 제로섬 게임을 벌이고 있다. 파이가 줄어들기 시작하면 마이너스섬 게임이 고착화하는 수축사회로 갈 수밖에 없다.”
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분기점인가.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 환경오염으로 인한 성장 지체와 삶의 질 저하,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인간의 정체성 혼란이라는 인류 역사상 초유의 복합 전환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게 그때부터다.”
그렇다고 그걸 수축사회와 연결하는 건 비약 아닐까.
“환경이 성장을 제약하는 현상은 인류 역사상 처음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환경 오염 때문에 발생하는 비용만 연간 100조원이 넘는다. 전쟁 없이 인구가 줄어드는 현상도 처음이다. 기계가 인간의 지능을 대체하기 시작한 것도 처음이다. 그에 따라 역사상 가장 심각한 공급과잉이 빚어지고 있다. 각국이 돈을 풀어 경제를 지탱하다 보니 부채는 사상 최고 수준이다.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주의가 팽배하면서 사회적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경제·문화·이념적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면서 각자도생을 위한 제로섬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 결과 세계는 저성장·저소비·저금리 구조에 빠져 점점 쪼그라드는 추세로 가고 있다. 그게 수축사회다.”
경기 순환에 따른 침체기의 시작으로 볼 수도 있지 않나.
“1929년 대공황 때와 비교해 보자. 그때가 지금보다 어려웠지만, 그래도 그때는 환경문제가 없었고, 인구도 계속 늘어났다. 기술발전은 새로운 수요를 창출했다. 과잉부채도 없었고, 공급과잉도 없었다. 인간의 이기심도 지금 같지는 않았다. 지금 상황을 일시적 변화가 아니라 구조적 전환으로 보는 이유다.”
‘잃어버린 20년’을 겪고, 생산가능인구 자체가 줄고 있는 일본이야말로 수축사회의 표본이다. 그런 일본에서 나타나고 있는 구인란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아베노믹스로 일본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고 하지만, 2008년부터 양적완화를 통해 국내총생산(GDP)의 84%에 달하는 엄청난 돈을 풀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본중앙은행은 주가가 떨어지면 증시에 개입한다. 인위적으로 경기를 부양하고, 주가를 떠받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1.1%에 불과했다. 일본의 구인란은 인구 구조 때문이다. ‘단카이(團塊)’ 세대를 비롯해 2000만 명에 달하는 1, 2차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했음에도 일본은 이제서야 외국인 인력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일본 경제의 3분의 1 규모인 한국에는 이미 150만 명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들어와 있다. 일본의 구인란은 저급한 일자리에 한정된 얘기다.”
미국도 지표상으로는 거의 완전고용 상태다.
“기축통화를 가진 패권 국가 미국을 비교 대상으로 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4차 산업혁명이 수축사회 진입을 가속화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하면서 동시에 4차 산업혁명이 수축사회를 돌파하는 유일한 활로라고 주장하고 있다. 모순 아닌가.
“4차 산업혁명의 초기 단계에서는 일자리 파괴가 불가피하다. 그게 두렵다고 4차 산업혁명을 포기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특이점’으로 일컬어지는 티핑포인트가 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약 50년 후가 될 거로 본다. 같은 수축사회라 하더라도 4차 산업혁명에 성공한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의 차이는 엄청날 것이다.”
수축사회에 대비해 강조한 것 중 하나가 이타적 마음가짐이다. 인간의 본성에 비추어 그게 과연 가능할까.
“어렵지만 해야 한다. 새뮤얼슨의 ‘행복 방정식’에 따르면 행복을 위해서는 소유를 늘리거나 욕망을 줄여야 한다. 하지만 인간이 욕망을 줄일 순 없다. 조절할 뿐이다. 미니멀리즘적 삶을 통해 욕망을 조절하고, 나의 행복은 타인의 행복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개인들 사고·생활방식·진로까지 바꿔야

수축사회 진입까지 5년의 골든타임이 남아 있다고 했는데, 한국의 경우 그렇다는 얘긴가.
“그렇다. 한국의 1차 베이비붐 세대의 막내인 63년생이 약 80만 명 정도다. 이들이 60세를 맞아 대규모로 은퇴하는 2023년이 되면 저성장, 저소비, 저금리의 수축 기조가 본격화할 것이다. 또 가계부채와 함께 노인빈곤 등 복지 문제가 한국 사회의 최대 이슈로 부상하면서 세대 갈등도 본격화할 것이다.”
수축사회를 앞두고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회적 자본이 무엇이고, 왜 중요한가.
“금융자본이나 지적 자본과 달리 사회를 자율적으로 움직이게 하고, 스스로 정화할 수 있게 하는 신뢰의 문화를 말한다. 우리 사회의 불신과 갈등이 세계 최고 수준인 것은 사회적 자본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양적 성장만 강조했지 사회적 자본 축적에는 소홀했다.”
지금 국가의 리더는 무엇을 해야 하나.
“미래를 보고 방향을 정하는 사람이 국가의 리더다. 정책과 실행은 관료나 대기업 출신이 훨씬 잘한다. 그들에게 맡겨야 한다. 리더가 실행까지 챙기다 보니 문제가 생긴다. 민주화 이후에도 수십 년간 그런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국가 지도자는 최소 10년을 내다보고 미래를 준비해야 하지만, 지금은 임기 5년만 생각한다. 미래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게 인구 구조의 변화다. 그에 맞춰 교육 시스템부터 바꿔야 한다. 현재의 교육제도는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다음 대선은 2035년을 내다본 공약 경쟁의 장(場)이 돼야 한다.”
기업들은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생존이 걸려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아도 알아서 한다. 못 하면 바로 도태된다.”
기업들이 마음껏 뛸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뜻인가.
“당연하다. 정부 부처마다 규제가 있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다 일리가 있지만, 서로 모순되는 점이 많은 게 문제다. 종합적이고 전체적으로 규제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수준과도 비교해야 한다.”
개인은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달라진 현실을 인식하고, 그에 맞춰 사고와 생활방식은 물론이고 진로 선택의 방향까지 바꿔야 한다. 다른 분야는 인력이 넘치지만, 인공지능이나 바이오 같은 4차 산업혁명 쪽 인력은 모자란다. 글로벌 사회에 통용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다. 과시형 소비도 줄여야 한다.”
다른 나라에 없는 변수 중 하나가 남북 관계 변수다.
“북한의 경제력을 키우는 것이 장차 통일 비용을 줄이는 길이다. 한국은 인문계 중심인 데 비해 북한은 이공계 비중이 높다. 특히 물리나 화학 같은 기초과학 수준은 괜찮은 편이다. 서로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이 꽤 있다고 본다.”
미·중이 패권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한국은 일본과 갈등을 빚고 있다. 한국 외교는 어디로 가야 하나.
“강대국에 포위된 우리 현실에서 외교는 어느 정도 모호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정치권이나 언론이 각자 자기 노선만 선명하게 내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외교의 격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인권 문제에서 원칙을 지키고, 대외 원조에서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 국제무대에서 졸부(猝富)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외교에 격이 있고, 사회적 자본을 갖춘 나라로 인정받으면 강대국도 우리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그렇게 되려면 우리 사회의 리더 그룹이 깨어 있고, 현명해야 한다.”

한국 증권사 보고서 뛰어나 세계 최고 수준

충남 연기가 고향인 홍성국 전 대표는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부모를 따라 서울로 왔다. 그때 정착한 도봉구에서 지금도 살고 있다. 초등학교 졸업앨범에 있는 집 전화번호를 지금도 쓴다.

그의 이력서는 심플하다. 대학(서강대 정외과)을 마치고 대우증권(현 미래에셋대우)에 입사해 신입사원에서 최고경영자(CEO)까지 오르며 약 30년 동안 한 직장에 근무했다. 조사·분석을 담당하는 리서치 분야를 주로 담당했다. 그는 한국 증권사, 특히 대우증권 출신 애널리스트들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들이 만드는 분석보고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고, 그들이 다루는 거대담론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물론이고 전 세계 글로벌 투자은행이나 경제연구소의 자료를 가장 많이 보는 곳이 한국의 증권사들이란 설명이다. ‘그 정도 수준이면 한국 증권사들이 해외투자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자 “최소 10년을 보고 투자를 해야 하지만, 3년마다 CEO가 바뀌는 게 현실이다”는 대답이 웃음과 함께 돌아왔다.

대표 재직 시절 “‘어떻게 우리나라 1등 증권사 사장이 도봉구에 사느냐’는 말을 종종 들었다”면서 “그걸 이상하게 여기는 사고방식만 바뀌어도 우리 사회가 조금은 더 살 만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그는 『수축사회』를 포함해 7권의 책을 썼다.

배명복 칼럼니스트·대기자 bae.myungb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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