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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미인' 찍고 방황하다 스토리 문득 … 그 전율이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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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비단구두'는 빚독촉에 시달리는 영화감독(최덕문)이 북의 고향에 가고 싶어 하는 조폭의 아버지(민정기)를 위해 가짜로 방북 프로젝트를 펼친다는 코믹 휴먼드라마다. 먼저 기획됐지만 세상에 늦게 나오는 바람에 '간 큰 가족'(2005)의 유사품이라는 억울한 딱지도 얻었다. 그러나 영화는 좌충우돌 코믹소동극을 넘어서는 진심의 울림이 있다. 80~90년대 민중미술의 대표작가인 민정기 화백을 필두로 연극 출신 배우들이 선보이는 연기 호흡도 짜임새 있다.

새 영화의 70%가 신인 감독의 데뷔작 겸 유작이고 감독들이 날로 조로하는 현실에서 여 감독의 귀환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중견 감독의 생존이라는 의미다. 직원도 없이 달랑 그 혼자뿐인 오리영화사를 차리고 '원맨 프로덕션' 독립영화군에 발을 디딘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영화에 대한 애정이 샘솟는다"고 말했다. 들뜸도 위축도 없는 담담한 표정이었다.

-개봉을 맞는 심경이 남다르겠다.

"1000만시대라지만 관객이 1000명이냐, 1만 명이냐를 따지는 판자촌도 있는 걸 잊지 말아 달라(웃음). '비단구두'는 2000년 처음 기획했는데 펀딩이 세 차례나 무산됐다. 좌절모드와 굴욕모드를 지나 2004년 영화진흥위원회와 KBS의 HD영화 지원작으로 선정돼 3억원 제작 지원을 받았다. 나머지 2억원은 사재를 털었는데, 말이 사재지 다 빚이다. 2004년 완성 후에도 극장을 잡지 못해 빚만 불리다 고소까지 당했고. 어쨌든 기쁘다. 수지타산만 맞출 수 있다면 이런 영화를 계속 하고 싶다."

-저예산 영화를 체험해 보니 어떤가.

"시나리오를 예산 규모에 맞췄다. 돈이 많이 드는 밤 신은 줄였고 평균 1~2일 촬영분량을 하루에 소화했다. 강원도 미시령 고개에서 이뤄진 개마고원신은 4일 분량을 2일에 몰아 찍은 것이다. 재촬영은 꿈도 못 꾸니까 사전연습과 준비를 철저히 했다. 스태프들은 다 엑스트라로 출연했고 촬영스태프가 조명스태프를 겸했다. 배우가 조명판을 들기도 했다. 1000만원 예산이 나온 엔딩신을 못 찍은 것은 좀 아쉽다. 엉겁결에 북한행 열차 화물칸에 들어간 두 주인공이 북에 내려 황당해 하는 장면이었다."

-앞으로도 저예산 독립영화를 고수할 생각인가.

"저예산과 상업영화를 오갈 생각이다. 차기작은 상업영화로 50억 내외의 사극이다. 영진위에서 예술영화는 4억, HD영화는 3억을 지원해 주는데 보통 최소 5억은 든다. 편당 1억~2억원의 빚, 50%의 고소 확률이 생기는 거다. 이 같은 '저예산 독립영화=부채 양산' 구조를 탈피하는 방법이 시급하다. 1년에 5억씩 20편만 지원해도 확 달라질 거다. 그래봤자 100억, 상업영화 한 편 제작비 아닌가."

-'비단구두'가 갖는 개인적 의미라면.

"'미인' 때 나는 최악이었다. 사십 줄에 들어섰고 거대담론은 사라졌고 허탈감을 참을 수 없었다. 오직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여자, 유한한 것뿐이었다. 허겁지겁 '미인'을 마치고 방황하던 어느 날 아는 선배 얘기 듣다가 '비단구두' 스토리가 떠올랐는데 온몸에 새 살이 돋는 듯한 느낌이었다. 6년여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감독 여균동의 새 출발을 알리는 영화다."

-한때 정치에 관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든 사람은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엔 변함없다. 단 내가 꿈꾸었던 정치는 보다 낭만적이고 이런 식의 이전투구가 아니었다. 지금 나는 영화가 좋고 그 어느 때보다 열정이 솟구친다. 이 나이에 현업감독으로 살아남는 게 쉽지 않은 걸 안다. 그래도 영화가 좋은 걸, 어쩌겠나. 천형이니 따라야지."

글=양성희 기자 <shyang@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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