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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무차별 보복 일단 모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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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과거 한미간에 섬유·철강·지적소유권 등 어려운 통상협상이 많았지만 이번 협상은 단순한 통상협상이 아니었다. 통상이익뿐 아니라 양 국민 우호·정치관계에까지 파급영향을 미치는 협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최종 미결정은 내주 말 밝혀지겠지만 농산물 개방에 관한 결정적 이견에도 불구하고 결렬을 피했다는 점에서 양쪽 모두에 의의가 큰 셈이다.
한국 측이 지난달 11일이래 세 차례나 워싱턴에 찾아와 미국 팀을 붙들고 협상을 벌인 것은 1차 적으로는 통상실익 때문임은 말할 것도 없다. 소위「우선협상대상국」으로 지정된다해도 보복조치까지는 협상이 열릴 것이므로 공연히 미리부터 양보하고 들어갈 것은 없지 않느냐는 의견이 정부 내에도 있었다.
아울러 주권국가의 체면도 차리지 않고 부총리·장관 등까지 워싱턴에 몰려갈게 무어냐는 비판도 있었다.

<부총리까지 총동원>
그러나 협상 팀으로서는 지정 전 협상과 지정 후 협상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견해로 회담에 임했다. 일단 PFC로 지정되면 의회보고 등 여러 요인 때문에 미 협상의 융통성이 적어진다는 실무판단이다. 지정 후 협상을 한다면 이번보다 더 많은 양보를 하기 전에는 해결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한국이 미국 내에서「불공정국가」로 인식돼「제2의 일본」이란 의구심이 굳어질 경우 한국은 제1의 교역상대 국과의 통상마찰이 심화되는 국면을 감수해야 한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특히 한국 측이 집요하게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을 물고늘어진 것은 지정의 경우 범국민적 감정손상 등으로 전반적인 양자관계가 악화돼 불필요한 정치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슈퍼301조의 시행에 관해서는 미국 내에서도 찬반양론이 팽팽한 실정이다. 미 무역대표부(USTR)「칼라·힐스」는 슈퍼301조가 외국의 시장을 개방하고 국제무역을 확대시킨다고 확신하고 있다.「리처드·모스배처」상무장관도 같은 신념이다.
그러나 반대론 자들은 이 조항이 보호주의를 강화할 뿐이라고 경고한다. 미국의 301조 시행은 외국의 보복을 초래하고 결과적으로는 세계경제의 침체까지 우려된다고 경고한다. 대통령경제자문 회의의장「마이클·보스킨」, 재무장관「니컬러스·브래디」등이 신중론 자들이다.
미국은 막대한 무역적자의 해결 방안으로 두 가지 길을 모색하고 있다. 하나는 통상 법 시행을 통한 외국시장 개방압력 강화이고 다른 하나는 서비스분야 등에 중점을 둔 다음간 국제협상 우루과이 라운드의 추진이다. 의회·행정부의 강경론자는 통상 법을, 신중론자는 다자간 협상을 주장하고 있어 사실 이번 슈퍼301조의 첫 시행은 새로운 미 통상정책의 분수령인 셈이다.

<미서도 찬반 엇갈려>
그동안 부처간 협의 과정에서 신중론자들, 특히 외교·안보관계를 고려한 국무성 등은 한국에 대한 우선협상대상국 지정에 대해 재고한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반적인 한미관계에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는 견해였다.
특히 이번 3차 협상에서 이 같은 미측 고려입장이 표면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측은 지난 11일 협상 첫날 농산물에 관한 입장을 밝히면서 지난「4·8」개방예시계획은 최종대안이라고 못박았다.
1,2차 협상 때까지만 해도개방예시에 들어있지 않은 품목 중 오렌지·대두 등 23개를 추가해달라던 미측 요구가 이번에 9개로 대폭 축소했지만 한국 측은 이것마저도 들어 줄 수 없는 입장을 명백히 했다.
미측은 당초 농산물·외국인투자·국산화 등 3개 분야를 한데 묶어 처리한다는 포괄협상자세였다.
미측은 관계부처 차관보급으로 구성된 무역정책협의그룹(TPRG) 회의를 수차 병행하는 과정에서 양국관계 전반에 관한 고려로 가능한 한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입장으로 신축성을 보이게됐고 한국은 이를 계기로 외국인 투자 및 국산화분야에서 미측과의 합의를 끌어내는데 주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무성, 안보 해친다>
이번 협상에서 대부분의 토론은 외국인투자부문에 할애됐으며 외국인투자에 대한 한국정부의 인가조건을 전면 폐지하라는 미측 요구에 대해 한국 측이 수출이행조건 폐지를 수용함으로써 돌파구가 마련됐다.
아울러 한국 측이 건별로 심사, 인가하던 제도를 93년까지 전면 신고제로 전환키로 물러선 것은 한국정부로서는 외국인투자에 관한 기존정책의 사실상 완전폐기를 의미하는 양보인 셈이다.
미국은 PFC지정의 근거로 지난달「힐스」가 발표한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를 바탕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가장 집중 논의된 일본을 비롯해 EC, 그리고 한국·대만·인도·브라질 등 개도국들이 지정대상에 오르내렸다.


농산물 분야의 미 합의와 앞으로 남아있는 미 정치적 결정과정 등으로 만약 실무협상결과에도 불구하고 대상 국으로 지정되는 경우 이번 협상합의를 가져온 한국 측 양보는 자동철회 될 것임을 한국 측 협상대표 김철수 상공부차관보는 밝히고있다.
다만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제소조치는 무역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가 있는 경우에 가능한 조치이므로 PFC지정이 아닌 추후 보복조치가 있을 때 결정할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설사 PFC지정을 면한다해도 이번 협상타결의 유효기간이 1년인 점, 농산물 문제가 남아있는 점은 한국의 짐으로 계속 남는다.

<워싱턴=한남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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