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권 없다는 장관 고백 탓? 장관실만 빠진 환경부 압수수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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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14일 환경부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내용물을 들고 정부세종청사를 빠져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14일 환경부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내용물을 들고 정부세종청사를 빠져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스스로 "임명 권한이 없다"고 밝혔던 장관의 자기고백 덕이었을까.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14일 실시한 환경부와 그 산하기관인 한국환경공단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환경부 장관실은 제외됐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 중인 검찰 #장관실 제외한 차관·감사관실 등 압수수색 #참고인들, 김은경 전 장관 진술은 안한듯 #"산하기관 임사권 없는 장관 모습 드러내"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주진우 부장검사)는 이날 오전 9시부터 정부세종청사에 있는 환경부 차관실과 기획조정실, 감사관실, 인천에 소재한 한국환경공단 경영지원본부장실 등에 수사관을 보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검찰 관계자는 "압수수색 대상과 범위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지만 이날 수사관들은 환경부 장관실의 문을 열지 않았다.

지난달 27일 자유한국당이 "환경부가 전임 정부에서 임명된 산하기관 임원들 동향을 관리하고 사퇴 압력을 가했다"며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박천규 차관, 주대영 전 감사관 등을 고발했는데 장관실만 압수수색 대상에서 빠진 것이다.

김은경 환경부 장관이 지난해 9월 12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연합뉴스]

김은경 환경부 장관이 지난해 9월 12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검찰의 수사에 대해 세종시의 한 국장급 공무원은 "장관이 산하기관 임원 임명권을 행사한 적이 없으니 수사 대상에서도 빠진 것 아니겠느냐"고 헛웃음을 지었다. 법적 인사권은 장관에게 있지만 실제 인사는 모두 청와대가 해왔다는 사실을 에둘러 말한 것이다.

실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은 지난해 8월 2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출석해 산하기관 임원의 임명 권한은 "사실 저에게 없다"고 밝힌 적이 있다. 당시 김동철 바른미래당 의원이 환경부가 산하기관 임원들의 사표를 일괄 수리한 것에 대해 "청와대와 상의했습니까, 장관의 판단입니까"라고 질문하자 나온 대답이었다.

국회 환노위 소속 신보라 자유한국당 의원은 "산하기관 임원들이 현 정부 인사로 채워진 뒤 김 전 장관에게 '코드 인사'라고 비판해도 장관은 무기력한 반응만 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 수사관들이 1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환경부 종합상황실에 압수수색 박스를 들고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 수사관들이 1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환경부 종합상황실에 압수수색 박스를 들고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의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관련 참고인 조사에서도 김 전 장관과 관련된 진술은 거의 나오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환경부가 지난해 1월 작성해 김태우 수사관에게 전달했던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들 사퇴 동향'에 등장하는 20여명의 전현직 임원들을 올해 초 집중적으로 소환해 조사했다.

법적 임기가 남은 임원들에게 청와대나 김 전 장관 등 윗선에서 사퇴 압력을 가했는지를 밝혀내는 것이 핵심인데, 법적으로 임명 권한이 있는 김 전 장관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지난 정부가 임명했던 김현민 전 한국환경공단 상임감사도 14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검찰 조사에서 지난해 8월 김 전 장관이 발언했던 국회 회의록을 참고하라고 진술했다"며 "산하기관 임원에 대한 낙하산 인사는 대부분 청와대가 행사하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지난달 26일 자유한국당 청와대 특감반 진상조사단 회의에서 김용남 전 의원이 공개한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들의 사퇴 등 관련 동향' 문건. [연합뉴스]

지난달 26일 자유한국당 청와대 특감반 진상조사단 회의에서 김용남 전 의원이 공개한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들의 사퇴 등 관련 동향' 문건. [연합뉴스]

물론 김 전 장관이 지난해 11월 물러나고 새로운 장관이 임명된 시점에서 현 장관실에 대한 압수수색의 실효성이 없었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 하지만 행정안전부 보안 지침 규정상 공무원이 퇴임할 경우 파일을 완전히 삭제하는 디가우징이 아닌 포맷을 하게 돼 있다. 영장을 받았다면 포렌식 수사를 통해 복원이 가능했다는 뜻이다.

일각에선 검찰이 환경부 장관실에 대한 수색영장도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김 전 장관에 대한 혐의 소명이 충분하지 않다며 기각했을 것이란 추측도 나온다.

압수수색 대상에서 장관실은 빠졌지만 차관실이 포함된 이유에 대해선, 정부 출범 직후 환경부 자연보전국 국장을 맡았던 박천규 차관이 국립공원 관리공단 임원들에게 사퇴 압력을 가했다는 일부 참고인 진술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박 차관은 앞서 중앙일보에 메시지를 보내 "산하기관 임원의 사퇴 언급은 정말 조심해야 될 사항"이라며 "산하기관 임원에 대한 사퇴 요청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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