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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경제위기 열쇠는 우리 손에"|부문별 전문가 토론 시리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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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박우희 교수=좌담회에 참석키 위해 학교에서 나오는데 오늘도 노학연계투쟁으로 동맹휴업을 한다고 하여 어수선하더군요.
한국 경제가 요즘처럼 사회와 정치·이데올로기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적은 일찍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올해 경제 전체를 개관하기에 앞서 우선 최근 거론되고 있는 경제의 위기론과 관련하여 과연 어느 정도의 위기인지부터 이야기해 보지요.
▲이형구 차관=위기다, 벼랑에 섰다, 기로에 있다 등 여러 가지 표현이 나오고 있는데 요즘 경제의 흐름이 심각한 것은 사실입니다.
산업생산·출하·제조업 가동률은 떨어지고 있고 수출도 원화표시나 물량표시로는 줄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런 쪽만 너무 강조하다보면 판단이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습니다. 투자나 소비동향을 보면 아직은 우리 경제가 그런 대로 굴러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결론적으로 우리경제가 어렵긴 하지만 꼭 기로에 있다고만은 할 수 없다고 봅니다.
돌이켜보면 우리 경제는 지금까지 3번의 위기를 맞았어요. 60년대 초반의 외환위기가 있었고, 70년대 말의 오일쇼크로 시작된 위기가 80년대 초까지 갔으며, 그리고 지금 또 한번의 심각한 국면을 맞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제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과거 두 번의 위기는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었던 나라밖의 여건 때문이었지만, 지금의 상황은 얼마든지 우리 할 탓에 따라 극복도 가능하며 따라서 희망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박성용 회장=소비나 투자를 밖은 지표로 말씀하셨는데 현재의 소비수요나 투자수요는 지난해의 성장이 반영된 것이지, 앞으로의 수요는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지금의 상태가 매우 심각하다고 보는 입장인데 근본적인 해결책부터 먼저 말씀을 드린다면 사회·도덕·정치 등 모든 면에서의 재무장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습니다.
30대까지도 포함하여 기성세대와 기성가치의 정치적·사회적·도덕적 부패에 대해 젊은층들이 반발하고 있는 것이 최근 사태의 본질이 아닐까요.
▲임동승 소장=저도 위기감을 심각하게 느낍니다. 지표로 보면 지난해 높은 수준의 연장선상에서 아직 크게 벗어난 것 갈지는 않지만 문제는 하강세를 보이고 있는 방향과 그 속도입니다. 올해까지는 그런 대로 버티겠지만 지금 추세로라면 내년이 심각할 것이라는 얘기지요. 그 원인은 정부의 정책잘못이라기보다 결국 노사분규에 있으며, 그것도 순수하게 경제적인 합리성 때문에 제기된 것이 아니라 정치·사회적인 갈등으로 인해 제기되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최근 노사분규의 양상을 보면 분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하나의 노사분규가 국민경제 전체에 파급되는 영향을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더구나 임금타결수준을 보면 합리성은 어디론가 증발하고 우선 타결부터 하고 보자는 분위기예요.
저는 평균 7∼8%의 임금인상이면 적정하다고 보는데, 요사이 타결되는 임금인상선은 20%에 이르고 있고 결국 물가인상과 임금인상·수출타격의 악순환을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외국인들에게는 이미 한국이 생산기지로서의 메리트를 잃었고, 저는 올해 우리의 경상수지 흑자가 60억달러도 힘들이라고 봅니다.
▲박 교수=저는 더 큰 위기감을 느낍니다.
일본은 엔고 하나 닥쳐도 국난이다 하여 온 나라가 대처를 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민주화를 한다면서 너무 급격히 풀리니까 가치관의 혼란상태에 빠진 듯 싶어요.
▲이 차관=두 가지 점에서 동의를 하겠습니다. 지금의 경제상황이 도덕적·사회적·정치적 문제들이 복합된 결과라는 점과 이런 상황이 2∼3년만 계속되면 정말 심각해지고 만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최근의 기업실사지수(BSI) 등을 보면 아직도 우리 기업들은 경제발전에 대한 자신감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사회적인 여론을 환기시켜 지금의 복합적인 상황을 풀어 가는 것밖엔 다른 대응방안이 없어요.
▲임 소장=여론은 정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나와야 하는데 지금은 여론부터 혼란상태에 빠져있으므로 더 심각하다는 겁니다.
저는 우리 경제가 한번 최악의 상태까지 가보기 전에는 그런 여론의 혼란이 극복되기 힘들이라고 봅니다.
▲박 회장=현 경제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과 회의가 위기의 본질입니다. 그런 만큼 하루 빨리 사회·정치적인 부패를 없애야만 합니다.
▲박 교수=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미일 등 다른 나라도 똑같았습니다. 계급간의 갈등은 합의가 잘 되질 않습니다.
우리의 여론수렴도 지금 상황으론 힘들 것 같고 그래서 위기라고 보는 겁니다.
▲이 차관=그러면 어떻게 해야만 하는 겁니까.
선진국이 된다는 게 도대체 뭡니까. 경제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외적인 분야가 함께 발전해야만 뒷받침되는 거지요.
최근의 노사분규는 생존권의 차원을 넘어 체제적인 이슈를 들고 나오고 있습니다.
결국 방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득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는 겁니다.
최근 문제가 된 대림산업 유화부문(구 호남에틸렌) 만해도 고졸초임 평균이 56만원 수준이에요. 따라서 임금 때문에만 노사문제가 터져 나온다고 볼 수가 없고 우리의 임금과 노동조건이 과연 그토록 나쁜 것이냐를 놓고 설득해야 합니다.
▲임 소장=지나친 노사분규는 결국 근로자의 실업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어떻게든지 알리고 이해를 구해야 합니다.
▲박 회장=임 소장의 말씀에 동감하면서 몇 가지 제안을 하겠습니다. 임금이 오르면 결국 자동화투자밖에는 길이 없고 따라서 생산성을 넘는 임금인상은 산업의 구조전환을 앞당긴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그것은 그만큼 다른 부문에서 미처 흡수하지 못하는 실업을 발생시킨다는 문제점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업으로서는 자동화투자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자금 구하기가 쉽다거나 금리가 싸다거나 하여 자금비용이 임금비용보다 낮아야 하는데 그게 아직 안되고 있다는 거지요.
▲이 차관=결코 올해의 우리경제를 낙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말하자면 걱정만 하자는 쪽이 아니라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하지 않겠느냐는 말씀을 더 드리고 싶습니다.
노사분규에 처음부터 너무 초점이 맞춰진 감이 있지만, 그 외에도 물가·대외통상·농어촌대책 등 산적한 모든 문제들이 다 예견됐던 프로세스이지 갑자기 돌출한 것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다만 노사분규에서 보듯 예상보다 훨씬 크게 증폭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인데, 그 같은 과정 속에서도 어떻게든 정치·사회·경제적인 코스트를 최소화시켜야만 하겠다는 국민적 컨센서스를 이뤄내야 합니다. 결국 따지고 보면 다 민주화의 코스트 아니겠어요.
▲박 회장=우리 경제가 가긴 갑니다. 그러나 실업이 크게 늘어날 것입니다. 그게 바로 코스트를 최소화해야겠다는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는 과정입니다.
▲임 소장=물가 이야기를 좀 해보지요. 정부가 물가를 잡겠다는 것은 좋은데 그 접근방법에는 문체가 있습니다.
요즘의 인플레는 비용상승, 특히 임금인상에 의한 코스트 푸시적인 성격이 강한데 정부는 기업의 금융비용을 내려주는 등 원인처방의 노력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차관=요즘의 물가오름세가 어째 코스트푸시요인뿐입니까. 수요가 늘면서 물가를 끌어당기는 측면도 많지요. 또 제가 알기로는 지난해 국내기업들의 전체 외형중 금융비용의 비중은 더 떨어졌어요.
또 물가가 다 오를 요인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특히 국제원자재가격의 상승세는 올 들어 크게 둔화되고 있습니다. 정부와 민간이 다 합심해서 어떻게든 올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을 5%선에서 잡아야 합니다.
▲임 소장=물가도 그렇고 국제수지문제도 다들 너무 안이하게 보는 것 아닙니까. 3년간 흑자를 지속하다보니 국제수지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지금 추세로라면 올해 국제수지·성장 둘 다 문제가 아닐 수 없어요. 우리 추산으로는 올해 경상수지흑자가 60억달러내외가 되지 않을까 하는데 아직 우리 경제의 체질상 수출이 부진해질 때 전체산업의 생명력이 얼마나 감소하는지를 너무 간단히 생각하는 듯 합니다.
그런 점에서도 노사분규가 일단 가라앉고 나면 환율의 절상을 중지하는 등 정부의 후속조치가 따라줘야 합니다.
▲박 교수=저는 국제수지전망을 임 소장보다 더 나쁘게 봅니다. 수출부진의 원인은 작년부터 계속된거고, 지금 수출이 나가는 건 그전에 투자된 것의 연속으로 나가는 것이지 가격은 이미 경쟁력을 잃었습니다. 자동차·전자가 그런 대로 기대할 만한데 이건 노사분규로 또 힘이 듭니다. 수출은 갈수록 힘들어질 거예요.
▲박 회장=수출은 정말 심각합니다. 올해의 임금협상이 대개 타결되고 나면 지난 3년간 평균임금은 달러베이스로 1백%의 인상률을 보이게 될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기업들이 수출에 대비하기 위한 시설투자를 안합니다.
▲이 차관=국제수지흑자가 연초 전망치 95억달러에는 못 미치겠지만 그렇다고 60억달러까지 떨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국제수지흑자규모 자체에는 큰 의미가 없고, 장기적으로는 GNP의 2∼3%수준에서 안정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문제는 흑자규모축소가 수출부진 때문이라는 것인데, 달리 보면 지난해 수출의 성장기여도가 45%였고, 올해는 그 비중을 25%까지 가져가자는 것이 정부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수출을 경시하자는 것이 아니라 수출이 준다고 우리 경제가 금방 엎어지는 게 아니니 너무 비관적으로 보지 말자는 이야깁니다. 오히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상황변화에 따른 기업의 인식변화가 빨리 빨리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고, 예컨대 기업 스스로의 구조조정노력이 더 활발해야할 것입니다.
▲임 소장=물론 옳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올해와 내년을 통틀어 볼 때 역시 지표는 현실에 비해 늦고, 올해는 어떻게 8%의 성장을 한다고 해도 경제의 하향추세에 따른 내년 이후의 문제가 더 심각하며 부업의 증가는 또 다른 사회적 불안을 낳을 것입니다.
따라서 정부가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실업의 원인이 어디 있느냐도 밝혀야 하고, 5월 이후에는 경기회복책을 써야할 것이며, 환율도 더 이상의 절상을 그만둬야 합니다.
▲이 차관=환율은 올해 어차피 작년보다는 보수적으로 운용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밝혀둡니다.
그리고 덧붙이고 싶은 것은 우리 경제 스스로의 적응능력을 상당히 신뢰하자는 겁니다. 정부정책의 전환이 물론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되고 노사모두의 자제와 노력, 경제를 지켜야겠다는 정치·사회적인 콘센서스 등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박 회장=결국 올해의 우리경제를 순탄하게 푸는 요체는 경제 내적인 대응이라기보다 한마디로 정치적 안정이라는 것 아닙니까.
▲박 교수=동감입니다. 지금의 혼돈 상태에서 하루빨리 합리와 이성으로 모두들 돌아가야 합니다. 행정부나 정치권은 물론 국민 각계각층이 모두 그런 분위기 조성을 위해 노력해야만 할 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정리=김수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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