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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그 시절 서로를 잊지 맙시다” 대문호가 꿈꾼 공동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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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6호 25면

석영중의 맵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⑤·끝 기억의 힘

모스크바를 출발한 20인승 미니버스는 황량한 중부 러시아의 대초원을 달려 마침내 칼루가 주 코젤스크에 있는 옵티나 푸스틴 수도원에 도착했다.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수도원 중 하나다. 우여곡절 끝에 합류한 1박2일 러시아 정교 순례단은 교통·숙식·수도원 답사와 성지 주일 미사 참례를 모두 포함한 비용이 2800루블(약 5만원)이었다. 순례자 전원이 나이 지긋한 러시아 부인들이었다. 모두 경건하고 소박하고 친절했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러시아 정교 그리스도교의 ‘정신’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망각과 기억은 인간 실존 버팀목 #세 살 때 죽은 아들 알료샤 ‘소환’ #나쁜 기억들은 살인·자살로 폭발 #신성한 추억이 영혼 구원하는 셈

운명·비극·사랑·존엄성 품은 우주 창조

도스토옙스키가 임종할 당시 살았던 셋집은 현재 도스토옙스키 기념관이 되었다. 이 셋집의 서재에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집필을 마무리했다.

도스토옙스키가 임종할 당시 살았던 셋집은 현재 도스토옙스키 기념관이 되었다. 이 셋집의 서재에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집필을 마무리했다.

1878년 5월 16일, 도스토옙스키의 세 살배기 아들 알료샤가 간질로 사망했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는 어찌 된 일인지 알료샤를 특히 사랑했다. 마치 그 아이를 곧 잃게 될 것이라는 걸 예감이라도 한 듯 유별나게 애지중지했다.”

도스토옙스키는 슬픔으로 폐인처럼 되어 옵티나 푸스틴 수도원의 암브로시 장로를 방문했다. 러시아 전역에 그 성덕이 알려진 장로와의 면담은 그에게 깊은 감동과 위안을 주었다.『카라마조프가의 형제』는 이때의 고통과 회복을 자양분 삼아 씌어졌다. 현실의 알료샤는 소설에서 착하고 잘생긴 셋째 아들 알료샤로 다시 태어났고, 옵티나 수도원은 배경으로 들어왔으며, 암브로시 장로는 저자의 사상을 대변하는 조시마 장로가 되어 소설을 주도했다. 도스토옙스키는 그런 식으로 먼저 떠난 아들을 기억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그곳 주민들과 동네 꼬마들 이야기를 펼쳐보인다. 얼핏 ‘소소하게’ 보이는 인물과 배경을 가지고 도스토옙스키는 인류 보편의 운명과 비극과 사랑과 존엄성을 포괄하는 장대한 우주를 창조했다. 이 우주에서 그가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기억이다. 도스토옙스키에게 기억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핵심적인 요인 중 하나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기억 덕분에 존재의 연속성이 가능해진다.

그에게 기억은 양이 아닌 질의 문제다. 모든 것을 다 기억한다는 것은 축복이 아닌 저주다. 어느 신경과학자의 지적처럼, 적당량의 망각은 인류의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다. “망각은 어떤 정보들을 위해서 다른 정보를 버린다는 것”이다.

앙심으로 변질된 기억은 망각과 동일하게 ‘인간다움’을 훼손시킨다. 적절한 망각은 비움이자 내려놓기다. 망각하고 비워내는 능력과 기억하는 능력은 인간 실존을 받쳐주는 버팀목의 양면이다.

카라마조프가의 구성원들은 모두 기억과 망각의 영역을 넘나든다. 아버지 표도르는 젊은 시절부터 ‘망각의 제왕’이었다. 자신의 안위와 직결되지 않는 것은 다 잊었다. 그가 자식들을 버린 것은 “단지 자식에 대해 완전히 잊었기 때문이다.” 노화와 지속적인 폭음은 그의 망각 성향을 부채질했다. 사망할 당시 현재의 쾌락에 대한 동물적인 탐닉 이외에 그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었다.

기억을 축으로 표도르를 비춰주는 인물이 스메르자코프다. 그는 나쁜 것만 깨알같이 기억하고 쌓아둘 수 있는 비상한 능력의 소유자다. 그의 머릿속은 어린 시절 받은 상처와 모욕에 대한 기억으로 가득 차 다른 어떤  감정도 들어올 여지가 없다.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있던 모든 ‘나쁜 기억들’은 결국 살인과 자살로 폭발한다.

‘실존적 기억’은 소설의 주인공인 셋째 아들 알료샤를 통해 드러난다. 현재의 그, 스무 살의 건강한 청년을 있게 한 일등 공신이 바로 기억이다. 도스토옙스키가 알료샤를 소개하는 대목에서 무엇보다도 기억을 강조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는 겨우 네 살 때 어머니를 잃었으나 그 후 평생에 걸쳐 (마치 정말로 어머니가 살아서 자기 앞에 서 있는 것처럼) 어머니의 얼굴과 그 부드러움을 기억하고 있었다.”

드미트리, 이반, 알료샤 세 형제 모두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중에서 어머니의 자애로운 얼굴을 기억하는 알료샤가 가장 행복하고 평온하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기억의 대상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기억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조건하에서도 그 속에서 의미 있는 것을 추려내어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은 행복할 수 있는 능력과 동일한 것인지도 모른다.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선 떠올려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에필로그는 ‘실존적 기억’의 의미를 장엄하게 쏟아낸다. 배경은 역시 소소하다. 가난한 퇴역군인의 어린 아들 일류샤의 장례 미사가 끝나고 알료샤는 동네 아이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다. 이 장면에서 기억은 수십 번 언급된다. 특히 “항구한 기억”(Eternal Memory)이란 구절이 강조된다. ‘항구한 기억’은 정교회 장례 미사의 레퀴엠으로, 다른 가사는 없이 그 구절만을 반복해서 노래한다. ‘항구한 기억’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로 들어와 죽은 아이를 위한 레퀴엠을 넘어 인간과 인생에 관한 저자의 메시지로 굳어진다.

일류샤가 살아있을 당시 아이들 중 일부는 그 아이를 못살게 굴고 속칭 ‘왕따’를 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일류샤를 땅에 묻으며 그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 진심으로 슬퍼한다. 이 대목에서 알료샤는 기억의 힘을 환기시킨다. “그 아이를 기억합시다. 우리가 이 마을에서 아름답고 착한 감정으로 혼연일체가 되어 그 가엾은 아이를 사랑했으며 아주 행복한 시절을 보냈었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기로 합시다.”

도스토옙스키가 생각한 공동체의 본질이 여기서 드러난다. 혈연이나 이해관계로 뭉친 집단도 아니고, 같은 공간을 점하는 집단도 아닌, “아름답고 착한 감정으로 혼연일체가 된” 아이들이 서로를 기억할 때 만들어질 공동체가 그에게는 무너진 가족의 대안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얼마 후 뿔뿔이 흩어져 각기 다른 인생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이십 년 동안 서로 만나지 못할지라도 잊지 맙시다.” 누구는 성공하고, 누구는 불행해지고, 또 누군가는 어쩌면 악당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서 무얼 하건 서로를 잊지 맙시다.”“어린 시절에 간직했던 그 아름답고 신성한 추억이 단 하나만이라도 여러분의 마음속에 남게 된다면 그 추억은 언젠가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하게 될 것입니다.”

도스토옙스키에게 기억은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선을 상기하는데서 출발한다. 그것은 본질로의 회귀이며, 현재를 있게 해준 근원에 대한 인정이며, 앞으로의 삶을 희구하게 해주는 동력이다. 단순히 과거의 사실을 되새기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사실을 다른 차원의 항구함으로 고착시켜주는 힘이다. 그것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인간의 현세에서의 삶, 유한하고 비극적인 삶을 ‘불멸’로 전환시켜준다. 기억을 통해 살아있는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이 연결되고, 각기 다른 시간들이 연결되고, 슬픔도 기쁨도 인생이란 이름의 거대한 물줄기로 합쳐진다. “삶은 대양과 같아 모든 것이 그 안으로 흘러들어 서로 만나게 된다.”

석영중 고려대 노문과 교수
고려대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에 러시아 정부로부터 푸시킨 메달을 수여받았으며, 제40회 백상번역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자유,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배운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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