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허리케인 구호금 14억 달러 황당 사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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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미국 정부가 지난해 발생한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리타' 이재민들에게 지급한 구호금 중 상당액이 고급 휴양지에서의 휴가비와 성전환 수술비, 이혼 소송 비용 등 엉뚱한 곳에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AP통신을 비롯한 미국 언론들이 14일 보도했다.

미 의회 회계감사원(GAO)은 이날 하원 국토안보위 산하 소위원회 청문회에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보고했다. GAO는 "표본 조사 결과 이처럼 낭비된 돈이 최소 6억 달러(약 5800억원)에서 최대 14억 달러(약 1조35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많으면 전체 구호금의 16%가 엉뚱한 곳에 쓰였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구호금 집행은 국토안보부 산하 연방재난관리청(FEMA)이 맡았다.

FEMA는 이재민들에게 신속하게 구호금을 전달하기 위해 상당액을 직불카드 형태로 나눠줬다. 그러나 GAO가 밝혀낸 직불카드의 사용처를 보면 황당한 경우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퇴폐업소에서 600달러를 쓰기도 하고, 성인용 비디오 구입에 400달러를 쓴 경우도 있다. 200달러짜리 샴페인을 사 마신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 카드로 휴스턴의 이혼 전문 변호사에게 1000달러를 치른 사례도 있다. 심지어 다이아몬드 장신구 구입과 하와이, 도미니카 공화국 등지에서의 휴가비로 사용되기도 했다. 한 시즌 동안 미국 프로풋볼을 볼 수 있는 입장권을 산 경우도 드러났다.

이처럼 부정 사용이 판을 친 것은 처음부터 부적격자에게 돈을 내준 경우가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다. GAO에 따르면 다른 사람 또는 있지도 않은 사람 명의로 구호금을 타낸 사례가 적지 않았다. 가짜 주소나 허리케인이 오기 전에도 사용하지 않던 부서진 건물을 주소지로 적고 돈을 받아낸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뉴올리언스의 공동묘지를 주소로 써낸 교도소 수감자에게까지 구호금이 지급됐다. 재소자 명의로 지급된 '주거 보조금'만 1000건이 넘는다. 한 사람이 13개의 사회보장번호(우리의 주민등록번호에 해당)를 이용해 13만9000달러를 타낸 경우도 있었다. 이 돈은 모두 같은 주소로 지급됐다. 최소한의 점검만 했더라도 막을 수 있었던 부정이다.

에런 워커 FEMA 대변인은 이에 대해 "재난 기간 동안 도움이 절실한 사람을 빨리 돕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일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GAO 관계자는 "이번 결과는 구호 요청 등록자들의 신원 확인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FEMA의 주장을 일축했다. 마이클 매콜 하원 국토안보위 소위원장도 "이 같은 행위는 미국의 납세자들에 대한 공격"이라며 "철저히 조사해 관련자들을 오랫동안 교도소에 수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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