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코리안] 두바이서 세계 최고층 짓는 한국 기술자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700m 높이의 세계 최고층 건물인 두바이 부르즈 타워 공사현장에서 한국인 기술자들이 현지인들과 함께 공사 진행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대성할 자식 키우는 데 더운 게 문제 되겠습니까."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세계 최고층 건물인 '부르즈 타워'를 짓고 있는 삼성물산 엔지니어들은 건물을 자식에 비교했다. 이주하(46) 공정팀장은 "일주일에 두세 층씩 올라가는 건물을 볼 때마다 자식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고 말했다. 현재 건물은 49층까지 올라간 상태. 지상에서 약 175m 높이다. 위에서 작업 지시를 하다 보면 해변에서 불어오는 열풍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5월 중순이지만 벌써 섭씨 50도까지 올라간다. 체감온도는 60도를 웃돈다. 습도까지 높아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긍정적인 사고만이 이런 '불지옥'을 견뎌내는 힘이다. "그래도 이 위에 올라오면 2도쯤은 낮아요. 시원~하죠"라며 이 부장은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의 작업모 안에서는 굵은 땀방울이 연신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다. 금요일 오후 시간을 제외하고는 1년 365일 24시간 진행되는 건설작업. 공정을 책임진 사람으로 덥다고 힘들다고 불평할 수도 없다. 한국인 23명을 포함해 2500여 명의 근로자가 개미처럼 땀을 흘리고 있기 때문이다. 1년반여 근무하는 동안 '재미있는 일이 뭐가 있었느냐'고 물으니 이 부장은 "밥 먹고 일한 것밖에 없다"며 또 한번 크게 웃었다.

이 부장은 해외건설공사 베테랑이다. 리비아에서도 일했고, 말레이시아의 유명한 쌍둥이 건물인 페트로나스타워(452m) 건설에도 참여했다. 그런 경험으로 그는 이곳 두바이에서 세계 최고층 건물 공정을 총괄감독하고 있다. 하지만 두바이는 말레이시아와 차원이 다르다. 부르즈 타워 공사현장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수십 개의 고층건물이 높이 경쟁을 하며 속속 올라가고 있다. '두바이는 건설 중'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곳이다.

"매일 아침 가장 높은 곳에 올라와 다른 건물들과 '눈높이 재기'하는 것이 낙이지요"라고 이 부장은 설명한다. 그의 경쟁 상대는 두바이 최고층인 부르즈 에미리트(356m)다. 매일 아침 이 건물과 키를 재며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자식'의 머리 부분을 만진다. "올해 말이면 100층으로 올라가 부르즈 에미리트를 따라잡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두바이를 발 아래 내려다보며 호령할 수 있겠죠."

이 부장은 "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과 아내를 한국에 두고 와 땀 젖은 작업복을 직접 빨아야 하지만 이 생각만 하면 힘이 솟는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타워 건설현장 바로 밑에 있는 임시 막사 사무실. 세계 최고층 건물이 단 한치의 오차도 없이 올라가도록 모든 계획을 조율하는 곳이다. 건물 디자인을 담당하는 조운성(39) 과장은 매일 도면을 들고 공사현장과 사무실을 오간다. "700m 높이의 건물입니다. 1㎜의 오차가 큰 문제가 될 수 있죠."

세계 최고층인 만큼 각종 첨단 공법들이 동원됐다. 당연히 세계 유수의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들도 함께 일하고 있다. 모두 30개국에서 모여든 이방인들이 두바이에서 '역사'를 세우고 있는 중이다.

초보 엔지니어도 있다. 삼성물산은 이곳에 6명의 신입사원을 파견했다. 6개월짜리 연수 과정이다. 지난해 8월 입사해 3개월 전 중동 지역으로 처음 파견 나온 양범모(28) 사원도 각오가 대단하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그는 "최대한 많이 보고 배우겠다"며 현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 있다.

두바이=서정민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