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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글로벌 강소기업이다 9. 반도체 검사장치 제조 '파이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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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이억기 파이컴 부회장이 서울 가산동 본사 사무실에서 반도체 검사 장치인 ‘멤스 프로브 카드’를 들어 보이며 설명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기회는 위기의 탈을 쓰고 찾아온다는 말이 있다. 파이컴의 이억기 대표이사 부회장은 이 기회를 두 번이나 꽉 잡았다. 첫 번째는 1980년대 말 닥쳤다. 그가 경기도 성남의 외양간을 개조해 백현전자라는 회사를 설립한 지 10년 만이었다. 이 회사는 직원 30명이 비디오.오디오에 들어가는 전선을 만들고 있었다. 문제는 임금 널뛰기였다. 1986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6.29 선언을 이끌어 낸 민주화 바람으로 수십년 간 억눌렸던 노동계의 힘이 분출되면서 임금이 해마다 거의 두 배로 뛰었다.

"사업을 접을지 말지 기로에 섰어요. 노동집약적 사업 대신 첨단 장비 제조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곧바로 일본에 건너가 아이템 수집에 들어갔다. 백방을 수소문해 업계와 연구계에서 용하다는 전문가들을 만나보니 반도체 검사 장치가 유망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수십 개의 미세 핀으로 반도체의 성능을 시험하는 장치다. 원래 손으로 오밀조밀 작업하는 일에는 자신있던 터였다. 전 재산을 쏟아 붓고 빚까지 내가며 기술을 익혔다. 시제품을 만들어 삼성전자에 들고 간 게 92년. 다행히 반응이 좋았고 그 뒤부터는 탄탄대로였다. 주문량이 늘었고 다른 대기업들도 손짓을 했다.

그런데 두번째 어려움이 닥쳤다. 매출이 100억원을 넘어선 2000년 대 들어 매출이 정체 상태에 빠진 것이다. "첨단산업은 자전거 같아서 계속 달리지(성장하지) 않으면 넘어집니다." 대책은 연구개발(R&D) 투자의 확충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2000년부터 3년간 총 430억원을 신기술 개발에 쏟아부었다. 이 기간의 총 매출 470억원에 육박하는 수준이었다. 때문에 2001년엔 134억원의 큰 적자를 냈다. 신제품 개발도 제때 안돼 회사 주가가 한때 공모가의 10%로 주저앉기도 했다. 천신만고 끝에 2003년 탄생한 게 '멤스 프로브 카드'다. 종전 장치보다 반도체 검사 속도가 네 배 이상 빨랐다. 해외 시장에서도 반응이 좋아 2004년에 220억원 어치를 수출했다. 신제품이 히트를 하면서 2004년 매출은 무려 전년의 2.6배로 뛰었다.

이 부회장은 철저한 주문 생산 방식을 회사의 최대 경쟁력으로 꼽았다. 창업 초기에는 주문이 몰릴 때마다 물량을 제때 대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재고를 떠안지 않겠다'는 철학으로 버텼다. 그는 R&D 덕분에 기사회생한 만큼 요즘도 매출의 10% 이상을 R&D에 투자한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보유 특허가 150여 가지에 이른다. 이 회사의 올해 매출 목표는 1000억원. 매출의 절반을 밑도는 수출 비중을 2~3년 안에 70%대로 늘린다는 목표다.

홍주연 기자 <jdream@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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