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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분모·분자 수싸움'···정부·재계 계산법 놓고 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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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국무총리가 24일 오전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 총리는 "최저임금 문제는 산업과 노동의 현장에서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사안"이라며 " 정부가 최선의 방안을 찾아내고 우려의 소지를 최소화하도록 성의를 다해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1]

이낙연 국무총리가 24일 오전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 총리는 "최저임금 문제는 산업과 노동의 현장에서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사안"이라며 " 정부가 최선의 방안을 찾아내고 우려의 소지를 최소화하도록 성의를 다해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1]

정부가 24일 국무회의에서 논란이 돼 온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수정하기로 했지만 경영계는 “받아들일 수 없는 안”이라며 반발했다. 수정안 역시 최저임금을 계산하는 기준시간에 주휴시간을 포함해 대법원 판례와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약정휴일 최저임금서 제외했지만 #주휴수당은 계산식에 포함 #경영계, 수정안도 강력 반발 #경총 "기존 고용부안과 똑같다"

이날 국무회의에선 실제 일한 시간(소정근로시간)보다 최장 69시간까지 늘어나는 것으로 입법 예고됐던 시행령의 최저임금 기준시간을 35시간만 늘어난 209시간으로 수정하는 안이 나왔다. 이재갑 고용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최저임금법 개정 당시 국회 논의에서 209시간(주휴시간 포함)을 전제로 논의했고, 최저임금위원회도 209시간을 기준시간으로 월 환산액을 산정한다”고 설명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24일 국무회의 후 브리핑에서 "최저임금 산정에서 약정휴일을 제외한다"는 내용의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24일 국무회의 후 브리핑에서 "최저임금 산정에서 약정휴일을 제외한다"는 내용의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저임금은 산입대상 임금(기본급+고정수당+매월 지급하는 상여금·복리후생비 일부)을 기준시간으로 나눠 계산한다. 거칠게 요약하면, 분자가 늘어나거나 분모가 줄어들면 기업에 유리하고 분자가 줄거나 분모가 늘어나면 노동자에 유리하다.

이렇다 보니 법에 규정된 문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놓고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와 법원의 판단이 다르고, 경영계와 노동계가 다른 소리를 내 왔다. 문재인 정부 들어 최저임금이 인상되면서 분자에 어떤 항목을 넣고(산입대상) 분모에 어떤 항목을 넣느냐(기준시간)를 놓고 갈등이 커졌다.

가장 큰 논란은 근로기준법에 규정돼 있지만 최저임금법에는 명시돼 있지 않은 ‘주휴수당’이다. 주휴수당은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법정수당으로 사용자가 반드시 지급해야 하는 돈이다. 저임금 시절 노동자의 임금 보전을 위해 만든 것으로, 주당 15시간 이상 일하면 하루(8시간)의 유급휴일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일하지 않은 8시간만큼의 돈을 받을 수 있단 의미다.

문제는 사업장에 따라 유급휴일이 다르다는 데 있다. 일부 대기업과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 사업장의 경우 법에 정해진 주휴일 외에 하루를 더 약정 유급휴일(4시간 또는 8시간)로 정했다. 실제 일한 것은 주 5일이지만 이틀(12시간 또는 16시간)치 임금을 더 받기로 한 것이다.

최저임금 '주휴수당' 논란 경영·노동계 입장 차이.   [연합뉴스]

최저임금 '주휴수당' 논란 경영·노동계 입장 차이. [연합뉴스]

현행 최저임금법은 최저임금 환산방법을 하위법인 대통령령(최저임금법 시행령)에 위임하고 있는데, 기존 시행령에 주휴일에 대해선 명시돼 있지 않았다. 고용부는 지난 30년간 법이나 시행령에 규정되지 않은 주휴일을 최저임금 계산 기준시간(분모)에 포함해 행정지도를 해 왔다. 문제는 행정지도에서 최저임금 위반으로 판단돼 재판에 넘겨지더라도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는 데 있다. 대법원은 일관되게 법정수당인 주휴수당을 최저임금 산입범위(분자)에 넣고, 주휴시간은 최저임금 기준시간(분모)에서 뺐다. 최저임금법에 소정근로시간(실제로 일한 시간)만 규정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1개월을 평균 4.345주로 쳤을 때 주 40시간 일하면 실제 일한 시간은 174시간이 되며 이를 소정근로시간이라고 한다. 당초 고용부는 최저임금법 시행령을 고쳐 분모가 되는 시간을 ‘소정근로시간+전체 유급시간’으로 정하려 했다. 이 경우, 최저임금 계산식의 분모는 소정근로시간(174시간)에 법정 주휴일을 더하면 209시간, 약정휴일까지 더하면 최대 243시간까지 늘어난다. 연봉 5000만원이 넘는 대기업이 최저임금 위반이 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 시행령이 발효되면 유급휴일이 이틀인 대기업의 경우 고액연봉을 지급해도 최저임금법 위반이 된다는 지적이 빗발치자, 주휴일만 더하고 약정휴일은 빼는 절충안을 내놓은 것이다.

임서정(왼쪽) 고용노동부 차관이 지난18일 김용근 한국경총 부회장을 방문해 악수하고 있다. 정부는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과 관련한 경영계의 우려에 따라 수정안을 내놨지만 경영계는 여전히 반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서정(왼쪽) 고용노동부 차관이 지난18일 김용근 한국경총 부회장을 방문해 악수하고 있다. 정부는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과 관련한 경영계의 우려에 따라 수정안을 내놨지만 경영계는 여전히 반발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경영자총협회·대한상공회의소·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들은 이날 강한 어조로 수정안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과 관련해 경영계 입장을 대변해온 ·경총은 이날 낸 입장문에서 “지난 5개월간 경영계가 한결같이 반대해 온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수정 논의된 것에 대해 경영계는 크게 낙담하고 억울한 심경마저 느낀다”고 밝혔다. 입장문은 “국무회의에서 노조의 힘이 강한 대기업에만 존재하는 약정유급휴일과 관련한 수당(분자)와 해당시간(분모)을 동시에 제외하기로 한 건, 고용부의 기존 입장과 실질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경영계 입장에선 아무런 의미가 없는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경총은 “정부가 기업의 최저임금 수준을 고의로 낮게 평가하기 위해 실제 근로 제공이 없는 ‘가상의 유급휴일시간’까지 분모에 포함하는 30년 된 고용부의 자체 산정지침에 대해 대법원이 일관되게 실효(失效) 판결을 내리고 있다”고 했다. 이어 “정부가 행정지침을 대법원 판결에 맞추어 시정하는 게 정도(正道)임에도 이번 시행령 개정은 이런 실체적 진실을 정면 외면하고 불합리한 기업 단속 잣대를 고집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경총은 시행령 수정안이 ▶대기업 고임금 근로자에게 나타난 개별 문제에만 임시방편적으로 접근했고 ▶법원과 다른 기준시간 문제를 해결하려면 시행령 개정이 아니라 국회 입법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영태 경총 경제분석팀장은 “국무회의 시행령 개정안은 합리적인 절충안이 아니라 잘못된 고용부 주장을 들어준 것에 불과하다”며 “대법원 판례와 고용부의 행정지도가 어긋나는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 채 기업들의 부담만 늘리는 안”이라고 말했다.

대한상의도  이날 입장문을 내 “대법원 판결 취지대로 최저임금법 시행령이 개정돼야 한다”고 반발했다. 대한상의는 입장문에서“최저임금제도의 목적에 비춰 최저임금을 산정할 때 약정휴일 시간과 수당을 함께 제외한 것(시행령 수정안)은 타당하지 않다”며 “실제 지급받는 모든 임금(분자)을 대법원 판결대로 실제 근로한 시간(분모)으로 나눠 계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경련은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은 최근 2년간 최저임금이 29.1%나 인상돼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며 “대법원 판례가 일관되게 유급휴일 근로시간을 최저임금 산정 근로시간에서 제외하고 있는데 이와 배치되는 정부의 개정안은 재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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