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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장관 찍어내려 청와대가 감찰?…9월이면 경질 결정된 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환경부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김은경 장관이 이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환경부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김은경 장관이 이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9일 퇴임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을 경질하기 위해 실제로 청와대가 찍어내기식 감찰을 했을까.

청와대 특별감찰반(특감반)에서 비위 의혹으로 검찰에 복귀한 김태우 수사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올해 재활용 쓰레기 대란 사태를 놓고 환경부가 잇따라 실책을 범하자 윗선으로부터 김 전 장관 경질을 위한 첩보 생산 지시가 반복적으로 내려왔다"고 밝혔다.

김 수사관은 또 "지난 9월 환경부가 흑산도 공항 건설에 반대하자 더 강도 높은 첩보 지시가 내려왔다"며 "'표적 감찰'을 주문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청와대 윗선의 지시로 김 수사관이 보고서를 작성해 올렸고, 그래서 김 장관이 경질됐다는 것이다.

청와대도 환경부에 대한 감찰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했다.

하지만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17일 "특정 장관을 겨냥해 감찰한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부처 간 엇박자와 인사 전횡 등 직무 관련 소문을 확인하라는 지시였다"고 했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이 17일 오전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인 김태우 수사관의 폭로와 관련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이 17일 오전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인 김태우 수사관의 폭로와 관련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누구의 말이 사실일까.

4월 당시 서울 일부 지역 등 수도권에서는 폐비닐 수거 거부 사태가 발생했다. 중국이 폐비닐 등 폐기물 수입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이런 방침을 지난해 7월에 밝혔고, 환경부가 발주한 연구 용역에서도 이 문제에 미리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4월 8일 당시 김은경 환경부 장관이 8일 오후 폐비닐 등의 수거가 중단된 인천광역시 연수구의 한 아파트를 방문하여 주민대표로부터 애로사항을 듣고, 재활용품 배출현장 및 수거 현황 등을 점검하고 있다. [환경부 제공=뉴스1]

지난 4월 8일 당시 김은경 환경부 장관이 8일 오후 폐비닐 등의 수거가 중단된 인천광역시 연수구의 한 아파트를 방문하여 주민대표로부터 애로사항을 듣고, 재활용품 배출현장 및 수거 현황 등을 점검하고 있다. [환경부 제공=뉴스1]

하지만 환경부는 미리 대비하지 못했고, 수거 대란이 발생한 후에도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해 아파트 단지에 폐비닐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에 언론에서는 김은경 장관을 비롯한 환경부 관료의 실책을 지적했고, 이낙연 총리도 환경부를 강하게 질책했다.
언론에서도 이미 김 장관을 경질해야 한다는 지적을 잇달아 제기한 상태였다.

환경부 담당자는 "당시에는 일 처리하기에 바빴고, 특감반의 조사를 받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당시 상황을 가장 잘 아는 홍수열 자원순환경제사회연구소장은 "당시 특감반의 연락을 받은 바는 전혀 없다"며 "환경부가 대응을 잘못한 측면은 있지만, 당시 의혹이 제기된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홍 소장은 "이미 환경부의 실책이 다 드러난 상황이어서 청와대가 굳이 감찰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흑산공항 건설 조기 착공을 지지하는 주민들이 지난 7월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태영빌딩 앞에서 열린 흑산도 신공항 건설 조기 착공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흑산공항 건설 조기 착공을 지지하는 주민들이 지난 7월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태영빌딩 앞에서 열린 흑산도 신공항 건설 조기 착공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흑산도 공항 문제로 9월에 다시 감찰 지시가 내려온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인 흑산도에 공항을 건설하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공약이었고, 전남지사를 지낸 이 총리의 역점사업이었다.

하지만 환경운동가 출신인 김 전 장관은 흑산도 공항에 끝내 반대했다.
이로 인해 지난 9월 19일에는 흑산도 공항 승인 여부를 결정할 국립공원관리위원회가 열렸으나 회의가 다시 연기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국립공원위원회 위원장인 박천규 환경부 차관이 지난 9월 19일 서울 마포구 국립공원관리공단 서울사무소에서 열린 흑산공항 신설 관련 다도해해상국립공원계획 변경안 재심의를 위한 124차 국립공원위원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뉴스1]

국립공원위원회 위원장인 박천규 환경부 차관이 지난 9월 19일 서울 마포구 국립공원관리공단 서울사무소에서 열린 흑산공항 신설 관련 다도해해상국립공원계획 변경안 재심의를 위한 124차 국립공원위원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뉴스1]

다수를 차지하는 민간위원들이 승인을 반대하자 국토교통부 등 정부위원들이 의결하지 않고 미룬 탓이다.

특히 당시 청와대는 환경부와 국토부 차관을 불러 조율하려 했으나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전후 사정을 고려하면 청와대가 환경부나 김 전 장관을 감찰했다고 해도, 장관을 찍어내기 위해 새로운 사실 파악에 나섰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더욱이 8월 말 개각 당시에 김 전 장관의 경질은 기정사실화됐다.
10월 초까지 경질 발표가 늦어진 것은 몇몇 후보들이 고사한 탓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때문에 김 전 장관의 경질을 목적으로 9월에 다시 감찰했다고는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당시 국정감사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굳이 조명래 신임 장관 후보를 발표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문제 제기는 있었다.
전격 경질에 대해 일부에서는 흑산도 공항에 반대한 김 전 장관이 국감에서 돌출 발언을 하지 않을까 청와대가 우려한 때문이 아닐까 하는 관측도 내놓았다.

결국 국회에서 조 장관의 인사 청문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고, 환경부 국감도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한편, 김은경 전 장관의 한 측근은 "김 전 장관이 알았다면 제게 말했을 텐데, 청와대 감찰 사실을 몰랐던 것 같다"며 "환경부 내부에서도 감찰 사실이 알려진 게 없었다"고 말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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