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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경제사정 요즘은 어떤가 |일자리 "별 따기"…대졸초임 7만원 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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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집트와 우리 나라는 지난 61년 말 일찌감치 영사관계를 맺었음에도 아직까지 국교를 정상화하지 못한 제3세계국가 중의 하나다.
그럼에도 우리 나라와의 경제교역은 비교적 활발한 편이어서 지난 76년 동산토건이 현지에 진출, 1천5백만 달러규모의 엘살람 하이야트 호텔공사에 참여한 이래 18건에 이르는 호텔·병원·제약공장을 건설했으며 대림산업은 카이로 화력발전소건설을 맡아 완공시킴으로써 우리업체의 시공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또 현지에는 삼성· 현대· 대우· 럭키· 선경· 효성·두산·금호· 한국타이어· 한일 합섬 등이 주재원을 파견해놓고 활발한 무역을 하고 있다.
53년 집권한 「나세르」가 민주적 사회주의를 표방한 이래 경제적 실패를 거듭해온 이집트는 이후 74년 「사다트」전 대통령이 문호개방정책을 내세워 외국인투자를 적극 유치하고 있다.

<교민은 3백여 명>
그러나 4대 주 수입원의 하나인 원유수출이 80년 이후 감소추세일 뿐 아니라 수에즈운하사용료·관광수입은 물론 해외송금마저 격감하고 있어 어려움을 겪고있다.
9개의 한국식당을 포함, 교민 3백여 명이 살고 있는 최근의 이집트사정을 현지취재 했다.
이집트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카이로국제공항에 내리자마자 당황하게 된다.
필요치 않은 것으로 알았던 입국비자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위기는 금방 넘길 수 있다. 그 비자라는 게 다름 아닌 9달러 어치의 수입인지를 사면 해결되기 때문이다.
일단 입국을 손쉽게 하게돼 다행스럽긴 하지만 곰곰 되씹어보면 이상한 일일 수밖에 없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로서 숱한 관광유적을 갖고있는 관광국 이집트가 외국인을 상대로 「인두세」를 물리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의문은 이 나라의 속사정을 알고 나면 저절로 풀리게 된다.
4백억 달러가 넘는 외채를 지고 있는데다가 해마다 누적되어 가고있는 재정적자를 다소라도 줄여보기 위한 궁여지책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집트가 이처럼 엄청난 규모의 외채를 안게 된 것은 만성적 입초국 (87회계연도의 경우
수출25억 달러· 수입80억 달러)이면서도 연간 40억 달러 씩의 식품보조비를 정부재정에서 지원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식품보조는 주식인 그피아스타라는 빵과 고기·채소의 정부배급으로 실시된다.
이 때문에 배급일인 매주 목요일에는 육류와 야채를 싼값에 사기 위한 행렬이 곳곳에 눈에 띈다.
특히 그피아스타는 개당 1센트도 안 되는 거의 공짜로 길거리에서든, 가게에서든 쉽게 구할 수 있다.

<외채 4백억 달러>
한때 사회주의건설을 표방했던 「나세르」 이후 다시 자본주의로의 복귀의 길을 걷고있는 이집트로서는 과거 잘못된 체제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사회전반에 걸쳐 사회주의의 색채가 짙게 깔려 있어 대학까지 학비는 무료다.
이 때문에 대졸 자들은 널려있지만 직장은 태부족인 상태다. 자연 구직난이 심각할 수밖에 없다.
당국은 이 같은 구직난을 해소하기 위한 묘수를 짜내 공무원사회에 적용하고 있다.
일단 취업률을 극대화하기 위해 필요한 인원의 7∼8배를 채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도 학비무료>
그러다 보니 사무직의 경우조차 직장에 아예 자기 책·걸상이 없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또 한사람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을 여럿이 분담하게 되어 있어 실제 근무시간은 매우 짧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카이로의 한 신문에는 공무원들의 하루평균 근무시간이 26분에 불과하다는 보도가 난 일이 있다.
우리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정이 이러니 임금은 자연 지극히 낮은 수준일 수밖에 없다. 한 사람 몫을 7∼8명이 나누어 월급을 받아야하기 때문이다.
임금은 대졸 초임이 1백 달러 선이며 최고수준인 외국은행의 경우도 2백 달러 정도에 지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취업률을 높이는데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 또 다른 예를 보자.
수도 카이로시의 경우 자동차가 적지 않아 러시아워 때면 서울의 교통체증을 뺨칠 정도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카이로시내에는 교통신호등이 거의 설치되어 있지 않다.

<교통신호등 없어>
대신 신호등이 있어야 할만한 곳에는 어김없이 교통경찰이 서있다.
고용효과를 높이기 위해 기계신호등을 설치하지 않고 「인간신호등」으로 그 역할을 대행케 하고있는 것이다.
이렇듯 국내에서 일자리 잡기가 힘들 뿐 아니라 설사 직장을 구하더라도 임금이 낮아 해외취업이 유행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빈 시내의 신문가판조직을 이집트인들이 석권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더욱이 놀랄 일은 이들의 대부분은 전직 이집트 신문기자들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 나라에선 신문기자들이 비교적 높은 임금을 받고 있는데 반해 이집트에서는 사정이 딴 판이다.
중동건설경기가 좋았던 시절에 사우디아라비아 등에 이집트의 근로자들 숫자가 무려 3백만 명에 이르렀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파악해보면 쉽게 수긍이 가는 일이다.
외국에 나가면 악착같이 벌어 국내송금으로 상당한 부를 쌓는 이집트인들이지만 국내에서는 그렇질 못하다.
『잔업처리를 위해 높은 시간외 수당을 준다고 해도 근무시간외에는 좀처럼 일을 하려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산토건 장문소 소장)
이들이 악착같이 일하지 않는 이유는 종교적 영향 때문인 것 같다는 게 장소장의 분석이다. 잘살고 못사는 게 다신의 뜻이라는 종교적 체념에서 비롯된 인생관인 셈이다.
카이로 쉐라톤호텔 신관신축공사를 위해 현지에 진출해 있는 김종춘 현장소장의 설명이 이를 보다 실감나게 해준다.
그는 이집트인들이 즐겨 쓰는 말로 「인샬라」 (신의 뜻에 따른다) 「보크라」 (내일)「말리세」 (미안하다) 의 세 가지를 들었다.
다른 회교국가들이 이집트를 「IBM」국가라는 별명으로 부르고 있는 것도 이집트인들이 즐겨 쓰는 세단어의 이니셜을 따내 만든 조어라는 것.
이들이 이 말들을 얼마나 즐겨 쓰는지는 쉐라톤호텔공사에 얽힌 에피소드에서 극명하게 볼 수 있다.
지난해 공사장에서 벽돌 한 개가 굴러 떨어져 지나가던 승용차의 앞 유리를 깨뜨려 운전자인 현지 여인이 1백 달러의 배상을 동산 측에 요구했다. 이에 동산은 일단 「말리세」 「보크라」로 맞섰는데 다음날 피해자의 남편이 직접 찾아와 「인샬라」라며 배상요구를 철회했다는 것이다.

<건설업진출 한계>
전반적인 사회분위기가 이렇다보니 현지의 기술수준이 낮았던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한때 현지 우리건설업체의 공사현장에서 못 통만 들고 다녀도 현지건설업체에 최고급목수로 스카웃 됐을 정도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그간 현지에 진출한 외국업체들로부터 노하우를 습득, 상당한 기술을 보유하기에 이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92년까지 연평균 5·8%성장을 목표로 추진중인 제2차 경제개발계획사업 중 연간 10억달러 규모 씩 발주되는 건설분야공사는 자국업체에 제한 입찰을 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로서는 부머랭 효과의 피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비교적 싼 임금에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성가를 올렸던 우리의 해외건설진출이 이곳에서는 한계에 이르렀음을 알려주는 신호라 할 수 있다.

<카이로=이춘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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