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먹구름 본다 - 인도 소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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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먹구름 본다 - 인도 소풍’- 문인수(1945∼ )

새벽 차가운 거리에

인도(人道) 여기저기에 웬 누더기 이불들이 시꺼멓게,

뭉게뭉게 널려 있습니다.

저 한 군데

이불자락이 자꾸 꼼지락거리더니 아,

젖먹이 아기 하나가 앙금앙금 기어나오는군요.

노란 물똥을 조금 쨀겨놓고

제 자리로 얼른 기어듭니다.

너무도 참 자발적 동작이어서

‘서식’이란 말이 뇌리에

거미처럼 달라붙었다 퍼뜩 떨어집니다.

아기가 단숨에 기어든 이 바닥은 사실

이역만리보다 멀어서

그 어떤 여행으로도 나는 가 닿을 수 없고요,

멀어서인지 잠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다만 여러 굴곡을 안에서 묶는 오랜 이불 속 사정이

그나마 한 자루 그득하게 꿈틀거리며

먹구름, 먹구름 흘러갑니다.



인도(印度)의 인도(人道)에 널려 있는 노숙자들. 먹구름 같은 이불 속에서 젖먹이 하나가 기어 나와 노란 물똥을 싸고 다시 들어갑니다. 산다는 것은 어디서나 저렇게 기가 막힙니다. 한국에도 인도(人道)에 사는 노숙자들이 참 많은데, 인도와 인도주의는 무관해보일 때가 참 많습니다. <이문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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