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뉴욕 아마존 제2본사, 2만명 고용효과에도 주민 반대 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지난 12일 뉴욕시청. 아마존이 제2본사 설립부지로 뉴욕시 롱아일랜드시티를 선정하게된 경위를 따지는 청문회가 열렸다. 신규로 2만5000명의 교용효과와 함께 지역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환영받을 만한 사안이다. 그러나 30억 달러(약 3조3000억원) 규모의 뉴욕주 세금을 감면받는 등 지나치게 많은 특혜를 입는다는 것이 청문회의 집중 추궁 대상이었다.

아마존의 제2본사를 유치해 젠트리피케이션이 급속도로 진행중인 뉴욕 롱아일랜드시티. 최정 미주중앙일보 기자

아마존의 제2본사를 유치해 젠트리피케이션이 급속도로 진행중인 뉴욕 롱아일랜드시티. 최정 미주중앙일보 기자

한가지 더 큰 문제가 아마존 제2본사 설립 뒤에 도사리고 있다.  뉴욕변화커뮤니티 회장인 조너던 웨스틴은 “아마존이 뉴욕에 오면서 원주민들에게 혜택을 주지 않을 뿐 아니라 실제로 뉴욕시에 사는 주민을 떠나게 만드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집값 지난해 비해 30% 치솟아 #자영업자·노동자들 쫓겨날 판 #아트갤러리 많던 첼시·소호도 #예술가들 임대료 감당 못해 떠나

젠트리피케이션은 낙후된 구도심이 활성화되면서 사람과 돈이 몰리고, 결과적으로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을 뜻한다. 1964년 영국의 사회학자 러스 글라스가 처음 사용했다.

아마존의 제2본사를 유치해 젠트리피케이션이 급속도로 진행중인 뉴욕 롱아일랜드시티. 최정 미주중앙일보 기자

아마존의 제2본사를 유치해 젠트리피케이션이 급속도로 진행중인 뉴욕 롱아일랜드시티. 최정 미주중앙일보 기자

지난달 아마존의 선정발표 이후 이 일대 아파트 가격이 지난해 11월에 비해 30% 가까이 치솟았다. 매물로 내놨던 아파트 물량을 주인들이 회수하면서 가격은 더 치고올라갈 전망이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임대료도 올라 일대 자영업자들의 부담은 커지게 마련이다. 이 일대 주민들은 노동자와 자영업자를 비롯해 주로 중산층 이하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뉴욕시청에서 열린 청문회에도 참석해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를 지적했다. 참관객이 앉을 수 있는 2층 자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플래카드와 함성으로 아마존 제2본사 설립의 무효를 주장했다.

사실 젠트리피케이션은 뉴욕시가 발전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늘 따라다니던 고질적인 사회문제였다. 특히 고층빌딩이 즐비한 맨해튼 내에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일상적이었다. 로큰롤 명예의전당에 헌액된 조이 라몬이 라이브 공연을 해온 맨해튼내 이스트빌리지가 대표적이다. 올드스쿨의 정취가 담긴 컨티넨탈바를 운영하며 이스트빌리지의 아이콘으로 키워왔다. 그러나 렌트비가 급등하면서 올해를 끝으로 문을 닫고, 내년에는 부띠끄 오피스가 들어올 예정이다.

뉴욕시내 렌트값 증가추이. 1990년과 2010-2014년을 비교했다. 자료=뷰잉 NYC

뉴욕시내 렌트값 증가추이. 1990년과 2010-2014년을 비교했다. 자료=뷰잉 NYC

과거 아트 갤러리가 많았던 첼시와 소호 지역은 이제 대기업들의 매장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이 지역에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가속화하면서 소비자들은 매력없는 거리에 흥미를 잃고, 결국 쇠락하는 현상을 빚기도 한다. 가파르게 치솟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매장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아니면 비어있기 일쑤다.

첼시와 소호 일대에서 활약하던 아티스트들이 맨해튼의 외곽으로 빠져나갔다. 뉴욕시의 남동부를 이루는 브루클린 일대가 대표적이다. 공장지대였던 윌리엄스버그에는 맨해튼과 가깝다는 이유로 일찌감치 대형상권이 형성되면서 이미 진입장벽이 높아졌다.

국내에서도 인기를 끈 미드 ‘섹스앤시티’에서 주요 캐릭터인 미란다가 맨해튼에서 브루클린으로 이사가는 걸 끔찍히도 싫어하는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이제는 옛말이다. 실제 해당 드라마의 주인공이던 사라 제시카 파크와 매튜 브로데릭 부부는 2012년에 브루클린하이츠에 타운하우스 두 채를 구입했다.

2004년과 2014년 집값을 비교해 그 차이를 색으로 표시했다. 녹색이 진할수록 대폭 올랐고, 빨간색이 진할수록 소폭 오른 지역이다. 자료=아메리칸 커뮤니티 서베이

2004년과 2014년 집값을 비교해 그 차이를 색으로 표시했다. 녹색이 진할수록 대폭 올랐고, 빨간색이 진할수록 소폭 오른 지역이다. 자료=아메리칸 커뮤니티 서베이

소위 힙스터라고 불리는 젊은이들이나 아티스트들이 예술적인 감각으로 동네를 꾸미고, 아기자기한 커피숍과 문화공간들이 들어서면서 유입 인구가 늘어났다. 브루클린 인구는 2010년 247만명에서 2016년 260만명으로 늘었다. 2020년에는 시카고 인구를 추월한다는 전망도 나왔다.

결과적으로 브루클린 내에서도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빚어지면서 가난한 아티스트들은 점점 더 외곽으로 이동하는 악순환을 낳았다. 지난 15년간 아티스트가 가장 많이 증가한 지역으로 브루클린의 와곽인 부쉬윅 지역이 꼽힌다. 부쉬윅이나 베드포드 지역은 치안이 불안한 지역으로 인식됐지만 점점 아티스트들이 모이는 동네로 변모하고 있다. 부쉬윅의 부동산 중개업소는 부동산 가격을 올리기 위해 직접 카페를 차리고 상권을 조성하기도 했다.

뉴욕시 구역별 아티스트 증가추이. 브루클린 부쉬윅 지역이 가장 높았다. 자료=센터포어번퓨처

뉴욕시 구역별 아티스트 증가추이. 브루클린 부쉬윅 지역이 가장 높았다. 자료=센터포어번퓨처

젠트리피케이션은 맨해튼에서 허드슨강 건너인 뉴저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호보켄은 맨해튼 접근성이 뛰어나 고소득 중산층 동네로 바뀐지 오래다. 바로 아래 지역인 저지시티가 2∼3년내 호보켄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면서 동네 바와 펍 주인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이 지역 개발붐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제럴드 쿠시너의 부동산 개발 그룹도 참여하고 있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따른 피해를 막기 위해 센트럴 브루클린에 14억 달러(약 1조6000억원)를 투입, 서민아파트를 짓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또 다른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