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대출' 전국 최대격전지, 안산 반월·시화 공단을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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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00여개 중소기업과 89개의 은행지점이 모여있는 경기도 안산 반월.시화공단은 올 초부터 격화되고 있는 '은행 대출 싸움'의 전국 최대 격전지다. 이곳 기업은행 동시화지점 조득현(사진.54)씨의 직책은 기업금융지점장. 그는 말이 지점장이지 거래 기업을 방문하는 게 하루 일과의 거의 전부다. 하루 평균 주행거리가 150㎞를 넘는다. 지난 7일 조 지점장의 하루를 기자가 동행 취재했다.

이날 조 지점장의 첫 일정은 오전 7시 안산시내에서 열리는 기독실업인회 조찬 모임. 일주일에 두 번 열리는 이 모임에는 이 지역 35명의 중소기업인이 참석했다. 그는 "은행 영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얼마나 많은 고객을 확보하느냐"라며 "조찬 모임은 생각이 비슷한 중소기업인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고 말했다.

8시30분, 지점으로 출근한 그는 직원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열었다. "산토끼 잡으러 다니느라 집토끼 단속이 안 된다." 그는 새 기업고객을 잡느라 기존 고객을 다른 은행에 빼앗기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반월.시화공단의 은행은 이미 포화상태를 넘어섰다. 기업의 수는 한정돼 있는데 올해 들어서만도 신한.하나.농협 등 10여개 지점이 새로 생겼다. 조 지점장은 "시장이 포화상태에 있다 보니 다른 은행의 고객을 빼앗지 않으면 목표를 채우기 어렵다"며 "이 곳은 전쟁터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는 "다행히 기업은행은 중소기업 대출 시장 점유율 52%로 이 지역 1위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고 밝혔다.

오전 10시10분,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H사 사장이 약속 없이 불쑥 찾아왔다. 금리를 낮춰주면 30억원 규모의 대출을 기업은행으로 옮기겠다는 제의다. 오전 11시, 조 지점장은 볼트생산업체인 J사를 방문했다. 골목길을 물어가며 간신히 찾아갔지만 사장은 자리에 없었다. 오후 12시30분, 단골 우수고객 M금속 사장과 점심을 했다. 우수고객도 관리하지 않으면 언제든 발길을 돌린다.

오후 2시, 졸린 눈을 붙일 새도 없다. 다시 차에 올라 B철강을 향했다. 주차장에 들어서니 사장의 차가 안 보였다. 바로 차를 돌렸다. 그는 "찾아갈 곳이 많기 때문에 시간을 아껴야 한다"며 "하도 다니다 보니 거래차 사장의 차까지 외우게 됐다"고 말했다. 조 지점장은 오후에만 5개사를 방문한 뒤인 5시40분에야 지점으로 돌아왔다. 오후 결재와 하루 일정 정리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조 지점장의 이날 하루는 오후 7시 저녁약속과 골프연습을 한 뒤인 11시가 넘어서야 간신히 마무리됐다.

그는 "2년여 전만 하더라도 지점장이 점장실에 앉아 있을 여유가 있었다"며 "이제는 직접 현장을 챙기지 않으면 언제 고객을 잃어버릴지 모른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중소기업 대출은 지난달에만 4조원이 늘어났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증가액은 18조6000억원으로 2003년(1~5월 24조3000억원) 이후 최대 증가폭이다.

안산=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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