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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불쌍한 것은 인간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13호 31면

요조의 책잡힌 삶

아무튼 비건

아무튼 비건

며칠전 나의 책방 앞으로 『아무튼, 비건』(위고)이라는 책이 배달되었다. 나는 책보다도 책과 함께 배달된 뱃지에 사로잡혔다. 뱃지에는 ‘make the connecting, go vegan!’이라는 문구와 함께 사랑스러운 돼지가 그려져 있었다. 정말로 귀여운 뱃지였다. 그러나 난 이 뱃지를 옷에 달 생각을 못하고 그냥 초조하게 만지작거리고만 있었다. 마침 책방에 가장 어린 단골 손님인 초등학교 1학년 김나린이 찾아왔다.

“나린아, 이모가 뱃지 줄까.”

나린이는 뱃지를 보더니 환호했다.

“줘, 너무 예뻐!”

나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런데말야…나린이가 이 뱃지를 달면 고기를 먹으면 안돼.”

“왜 안돼?”

“음, 여러가지 문제가 있는데…아무튼 이 뱃지는 고기를 이제 먹지 않고 예뻐하기만 하겠다는 약속 같은 거야.”

웬만해서 내가 주는 것을 거부하는 일이 없는 나린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난 됐어. 이모 달아.”

“이모도 못 달겠어서 그래. 나린이가 달아.”

“나는 고기를 먹어야 하는 사람이야. 이모가 달아.”

우리는 옥신각신 뱃지를 두고 다투다가 결국 돼지 그림이 보이지 않게 뒤집은 채로 책상 구석에 뱃지를 올려두었다. 그날 저녁으로는 나린의 가족과 양고기를 먹었다.

나로 말하자면 ‘고독한 채식주의자’이다. 직접 명명한 것이다.

나는 혼자 식사할 때만 육식을 피한다. 장을 볼 때도 육류를 웬만해서 사지 않는다. 그러나 여럿이서 식사할 때는 다수의 의견을 따라 아무거나 먹는데 거의 대부분 육식을 하게된다. 이런 태도는 나도 뭔가 실천하고 있다는 명분이 선다는 점에서, 내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여럿이서 밥을 먹을 때를 기회삼아 육식을 향한 허기를 채울 수 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완벽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내 양심은 한 마디 시비거는 것을 늘 잊지 않았다. ‘넌 그냥 생색내고 있는 거잖아’라고 말이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올해 봄 하재영 작가님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창비)을 읽었을 때가 생각난다. 스스로는 개고기를 먹지 않지만 남들이야 먹든 말든 별 관심이 없었던 나는 그 책을 통해서 ‘개고기 식용 문화’는 사라져야 한다는 것을 완벽하게 납득했다. 윤리적 차원의 문제는 차치하고, 개들이 무엇을 먹으며 길러지고 결국 어떻게 죽임을 당하는지를 알고 나자 그 고기를 여름 복날에 세번이나 먹는 짓이 결코 인간에게 유익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 개들은 똥과 오줌이 몇 겹이 되도록 굳고 쌓이는 것을 반복하는 지옥같은 철창 안에서 생명이라면 먹을 수 없는 것들을 먹는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온통 독으로 점철된 애들을 건강을 위한답시고 먹는 것을 도저히 남들이야 먹든지 말든지 하는 식으로 놔둘 수가 없었다. 나는 올해 처음으로 내 가까운 사람들에게 호소라는 것을 해보았다. 개, 그리고 나한테는 개보다도 더 소중한 당신을 위해서 개를 먹는 것을 그만두자고.

어제 『아무튼, 비건』을 읽었다.

불쌍하니까 동물들을 먹지 말자고 감정에 기대는 책이 아니었다. 오히려 책을 다 읽고 나니 가장 불쌍한 것은 인간 같았다. 지금의 공장식 축산 시스템 때문에 소, 닭, 돼지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유, 계란, 해산물, 양식물까지 몽땅 엉망진창이었다. 결론적으로 비건을 실천하는 것은 몹시 어려워보였다. 특히 한국에서 실천하는 것은 더 고난길이었다. 그러나 비건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위대한 일이기도 했다. 인간의 생명 뿐만 아니라 동물의 생명으로까지 자기 감수성을 넓히는 일이자 스스로의 건강을 확실히 챙기는 진정한 자기애의 실천이고 뿐만 아니라 이 사회를 지배하는 자본주의의 그릇된 구조의 일부를 향한 몸의 발언이기 때문이었다. 정치였던 것이다.

나는 계속 책방에 두고 온 뱃지 생각을 하고 있다. 아마도 이 뱃지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못할 것 같다.

요조 뮤지션 chaegbangmusa@gmail.com
뮤지션. 제주의 책방 ‘책방무사’ 대표. 『요조 기타 등등』 『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은 기분』을 썼다.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를 장강명 작가와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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