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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과불식" 마지막 과실은 후손 위해 먹지 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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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 신영복(65.사진) 성공회대 교수가 8일 마지막 수업을 했다.

8월 정년퇴임을 앞둔 신 교수는 "20년 동안 감옥에 있다가 나와 첫 강의를 한 17년 전의 떨리는 마음이 떠오른다"고 입을 떼었다. 신 교수의 마지막 수업이 된 강의는 사회과학부의 교양 강의인 '신영복 함께 읽기'. 이날 강의에서 신 교수가 강독한 글은 '죽순의 시작'과 '희망의 언어 석과불식(碩果不食)' 등 두 편이었다. 신 교수는 시련 끝에 단단한 마디를 지니게 된 대나무와 '마지막으로 남은 과실은 후손을 위해 먹지 않는다'는 뜻의 단어를 설명하며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을 것을 주문했다. 칠판에 손수 나무와 과실 그림을 그리며 강의한 신 교수는 청중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추며 여유 있게 수업을 진행했다. 중간 중간 감회에 잠기는 모습도 보였다.

신 교수는 "사람이 이 시대의 희망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자원"임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냉철한 지성을 갖는 것만으로는 안 되며 따뜻한 가슴이 더해져야 진정한 의미의 사상을 가진 인재가 될 수 있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이날 강의에는 재학생뿐 아니라 졸업생.시민 등 300여 명이 몰렸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강의실을 찾았고, 성공회대 일부 교수는 학생들에게 고별 강의를 청강토록 했다. 1989년 3월 신 교수의 성공회대 첫 수업을 들은 제자 송경용(46.하늘사랑복지회 이사장) 신부는 마지막 수업을 듣기 위해 영국에서 부랴부랴 한국에 들어왔다. 송 신부는 "학창 시절 교수님 수업은 강의보다는 대화에 가까웠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받고 20년간 옥살이를 했다. 그의 옥중 사색을 담은 저서들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통찰로 주목받았다. 성공회대 측은 "석좌교수나 명예교수로 성공회대에 계속 남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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