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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신청 74% 은행에서 퇴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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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은행.카드사 같은 금융회사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서민이 늘고 있다. 경제활동인구의 3분의 1이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리지 못하는 처지다. 신용등급이라는 '장벽'에 막혀 있는 것이다. 금융회사가 앉아서 손쉽게 돈을 버는 아파트 담보대출에 매달리면서 서민의 신용대출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금융기관이 서민 대출을 죄고 있는 상황에서 이자를 40%로 묶은 이자제한법(법무부 안)을 추진하면 자칫 불법 사채시장만 활성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한국개발연구원 박창균 연구위원은 "불법 사채금리가 2000~3000%로 치솟아 결과적으로 그런 돈을 빌릴 수밖에 없는 사람의 고통만 커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금융권에 근무하는 김모(25)씨는 사회 초년생이던 4년 전 개인 대부업체에서 200만원을 빌려 썼다가 내내 고통을 겪고 있다. "사(私)금융을 이용하면 제도권 금융회사를 이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당시엔 몰랐죠. 카드 발급이나 대출을 거절당할 때마다 조회기록이 쌓여 신용등급만 떨어졌어요."

공기업 계약직 사원으로 10년째 일하는 허모(36)씨. 그는 올해 결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시중은행 세 곳에 대출신청을 했다가 모두 거절당했다. 과거 한 차례 연체한 기록밖에 없는데 계약직이라는 이유로 신용대출이 어렵다는 것이다.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자 허씨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알고 보니 은행의 대출심사 담당자들이 회사 인사과로 제 고용상태를 물어봤더라고요. 계약직이라고 차별하는데 참을 수 없었어요."

취재팀은 김씨.허씨같이 금융회사에서 대출받지 못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왜 그렇게 됐는지 알아봤다. 개인신용평가사인 '한국신용정보'와 공동으로 2002~2005년 4년간 금융권에 대출을 신청한 3157만 건의 2개월 내 대출 성사 여부를 확인했다. 그 결과 2155만 건(68.3%)이 대출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10건 중 7건 가까이 거절당한 것이다. 은행의 대출 거절률은 65.1%(2002년)에서 74.8%(2005년)로 높아졌다.

취재팀은 대출 중개기관인 '한국이지론'과 함께 실제로 올해 대출을 거절당한 5000명의 대출 거절사유를 확인해 봤다. 대부분이 ▶대부업체 이용▶소득 불분명(계약직.자영업자)▶신용등급 미달▶연체 경력이었다. 멀쩡한 직장인이나 자영업자도 소득증명이 어렵다는 이유로, 무심코 사금융을 이용했다는 이유로, 한 번의 연체 기록이 있다는 이유로 '금융 약자'가 된 것이다.

은행.보험사.카드사는 금융회사에 따라 신용 1~10등급 중 6등급 이상에만 주로 돈을 빌려주고 있었다. 7등급 이하 사람들은 고금리의 대부업체나 초고금리 불법사채밖에 이용할 수 없는 것이다. 7등급 이하 금융 약자층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684만 명. 우리 경제활동인구의 30%다.

한국소비자금융협의회 이재선 사무국장은 "금융서비스에서 소외된 일부 서민들은 초고금리의 사채시장으로 내몰려 빚의 악순환에서 헤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정효식.천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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