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에 근무하는 김모(25)씨는 사회 초년생이던 4년 전 개인 대부업체에서 200만원을 빌려 썼다가 내내 고통을 겪고 있다. "사(私)금융을 이용하면 제도권 금융회사를 이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당시엔 몰랐죠. 카드 발급이나 대출을 거절당할 때마다 조회기록이 쌓여 신용등급만 떨어졌어요."
공기업 계약직 사원으로 10년째 일하는 허모(36)씨. 그는 올해 결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시중은행 세 곳에 대출신청을 했다가 모두 거절당했다. 과거 한 차례 연체한 기록밖에 없는데 계약직이라는 이유로 신용대출이 어렵다는 것이다.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자 허씨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알고 보니 은행의 대출심사 담당자들이 회사 인사과로 제 고용상태를 물어봤더라고요. 계약직이라고 차별하는데 참을 수 없었어요."
취재팀은 김씨.허씨같이 금융회사에서 대출받지 못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왜 그렇게 됐는지 알아봤다. 개인신용평가사인 '한국신용정보'와 공동으로 2002~2005년 4년간 금융권에 대출을 신청한 3157만 건의 2개월 내 대출 성사 여부를 확인했다. 그 결과 2155만 건(68.3%)이 대출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10건 중 7건 가까이 거절당한 것이다. 은행의 대출 거절률은 65.1%(2002년)에서 74.8%(2005년)로 높아졌다.
취재팀은 대출 중개기관인 '한국이지론'과 함께 실제로 올해 대출을 거절당한 5000명의 대출 거절사유를 확인해 봤다. 대부분이 ▶대부업체 이용▶소득 불분명(계약직.자영업자)▶신용등급 미달▶연체 경력이었다. 멀쩡한 직장인이나 자영업자도 소득증명이 어렵다는 이유로, 무심코 사금융을 이용했다는 이유로, 한 번의 연체 기록이 있다는 이유로 '금융 약자'가 된 것이다.
은행.보험사.카드사는 금융회사에 따라 신용 1~10등급 중 6등급 이상에만 주로 돈을 빌려주고 있었다. 7등급 이하 사람들은 고금리의 대부업체나 초고금리 불법사채밖에 이용할 수 없는 것이다. 7등급 이하 금융 약자층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684만 명. 우리 경제활동인구의 30%다.
한국소비자금융협의회 이재선 사무국장은 "금융서비스에서 소외된 일부 서민들은 초고금리의 사채시장으로 내몰려 빚의 악순환에서 헤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정효식.천인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