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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적 된 부자의 ‘막장 드라마’ … 헤세·카뮈가 열광한 까닭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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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호 25면

석영중의 맵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① 아버지와 아들

‘예언자’로 추앙받은 소설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가 자신의 문학세계를 집대성한 작품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다. 도스토옙스키가 러시아와 유럽에 남긴 모든 흔적을 직접 찾아가 확인해온 고려대 노문과 석영중 교수가 중앙SUNDAY S매거진에 ‘맵핑 도스토옙스키’를 연재한데 이어 이 대하 소설이 주는 커다란 울림을 5회에 걸쳐 우리에게 전한다. 편집자

주색잡기에 정신 나간 아버지 #여자 때문에 아버지 죽인 아들 … #격랑의 당시 러시아 속살 파헤쳐 #‘도스토옙스키 문학 집대성’ 격찬

방탕하고 교활한 홀아비 표도르 카라마조프는 두 번의 결혼으로 세 아들을 얻었다. 현재 55세인 그는 아들들의 양육은 전적으로 남의 손에 맡겨놓고 주색잡기를 일삼으며 살았다. 첫째 아들 드미트리는 “과격하고 색욕이 강하고 인내심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난봉꾼”으로 성장했다. 둘째 아들 이반은 “자부심이 강하고 신중한” 과학도로 얼마 전에 대학을 졸업했다. 두 아들은 아버지를 지독하게 혐오한다. “저따위 인간은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 걸까!”

심성이 고운 셋째 아들 알료샤는 중학교를 중퇴하고 인근 수도원의 덕망 높은 장로 밑으로 들어가 수도사의 길을 밟고 있다. 집안에는 표도르가 동네 백치 여자와 장난삼아 관계를 맺어 얻은 서자 스메르자코프가 하인이자 요리사로 함께 살고 있다. 늙은 하인 그리고리 부부의 손에서 자라난 스메르자코프는 아버지와 형제들은 물론 세상 전체를 증오한다.

미국 화가 앨리스 닐의 일러스트. 표도르와 카라마조프가의 세 형제, 그리고 하인 그리고리를 그렸다.

미국 화가 앨리스 닐의 일러스트. 표도르와 카라마조프가의 세 형제, 그리고 하인 그리고리를 그렸다.

어느 날 아버지의 집에 세 형제가 다 모이면서 비극은 시작된다. 드미트리는 동네 늙은 상인의 첩인 그루센카를 한 번 보고는 넋이 나가 약혼녀인 양갓집 아가씨 카테리나를 버린다. “벼락을 맞은 끝에 몹쓸 병이 들어 지금까지 앓고 있는 거지.” 아버지 표도르 또한 그루센카에게 반해서 “밤에 혼자 찾아오면 주겠다”며 봉투에 3000루블을 넣어 기다리고 있다. 한편, 이반은 드미트리의 심부름을 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형의 약혼녀 카테리나를 남모르게 연모한다.

드미트리는 그루센카와 함께 새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절실하게 돈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죽은 모친의 유산을 내놓으라며 아버지를 닦달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인색한 아버지가 ‘연적’인 아들에게 돈을 줄 리가 없다. “한 푼도 줄 수 없어. 그놈을 바퀴벌레처럼 짓뭉게 버릴 테다.” 드미트리는 아버지를 두들겨 패고 협박한다. “조심해 영감, 다음 번에는 죽이러 오겠어.” “아버지한테 가서 머리통을 부수고 그 자의 베개 밑에 숨겨놓은 돈을 가져오겠어.” 그런데 얼마 후 아버지가 진짜로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아 살해당하고 그루센카를 위해 마련해 두었던 3000 루블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원숙기 대문호는 도대체 이런 ‘콩가루 집안’ 스토리를 가지고 무슨 메시지를 전하려 한 것일까? 아니, 왜 이런 ‘싸구려’ 소설에 헤세와 카뮈에서 비트겐슈타인, 하이데거, 칼 바르트, 투르나이젠에 이르는 세계의 문호와 철학자와 신학자들이 열광하는 것일까?

통속적 소재, 심오한 주제의 오묘한 결합

도스토옙스키는 ‘막장 드라마’ 같은 소설에서 선과 악, 그리스도교와 휴머니즘, 전체주의와 자유, 정의와 심판, 사랑과 용서의 의미를 탐구한다. 끝없이 통속적인 소재와 끝없이 심오한 주제가 끊임없이 마주쳤다 흩어지고, 흩어졌다가 다시 뒤얽히면서 가정소설·연애소설·심리소설·정치소설·종교소설·추리소설이 다 합쳐진 방대한 ‘종합소설’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산만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한 가지 튼튼한 ‘실’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사람과 사건과 사상을 촘촘하게 꿰매주기 때문이다. 대하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의 ‘짜임새’를 유지시켜주는 핵심은 ‘아버지와 아들’(‘부모와 자식’)의 테마다.

러시아 유리 모로즈 감독의 8부작 TV 시리즈(2008). 원작에 가장 충실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러시아 유리 모로즈 감독의 8부작 TV 시리즈(2008). 원작에 가장 충실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금 과장을 보태 말하자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는 ‘아버지와 아들’의 코드 없이는 단 한 줄도 읽을 수 없다. 등장인물은 ‘아버지’ 그룹과 ‘아들’ 그룹으로 나뉜다. 전자는 아버지, 양아버지, 대리부, 아버지뻘 되는 사람, 혹은 어머니 등을 포함한다.  후자는 아들, 양자, 의붓아들, 딸, 딸 뻘 되는 여자 등을 포함한다.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대부분의 경우 아버지가 ‘갑’이고 자식들은 ‘을’이다. 사악하고 탐욕스러운 ‘포식자’ 아버지들은 자식을 유기하고 착취하고 학대한다. 어떤 아버지들은 착하지만 돈과 능력이 없어 본의 아니게 자식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다.

자식들은 자식들대로 아버지로부터 받은 고통에 다양한 방식으로 반응한다. 증오를 대놓고 표출하는 자식도 있고 마음 속 깊은 곳에 분노를 쌓아 두었다가 ‘뒤통수’를 때리는 자식도 있다. 몇몇 예외가 있지만 대부분의 자식들은 조금씩 ‘이상하게’ 성장한다. ‘자식의 이상한 성장’이 극에 이를 때 발생하는 것이 ‘친부 살해’다.

도스토옙스키가 활동하던 시기 러시아는 농노해방·사법개혁·서구 자본주의의 유입·급진적 사회사상의 확산 등 문자 그대로 격랑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른바 ‘대변혁’의 ‘쓰나미’앞에서 수많은 가정이 붕괴되어 갔다. 가정은 가장 불행한 변화의 희생자이자 가장 심각한 사회악의 진원지였다. 도스토옙스키는 당대 러시아가 겪고 있는 변화를 가족이라는 렌즈를 통해 들여다보고 동시에 가족의 해체와 붕괴를 망원경 삼아 러시아의 미래를 내다보았다.

대문호가 진단한 당대 사회의 질병은 패륜 중의 패륜인 존속살해로 소설화되었다. 패륜 가정은 패륜 사회의 거울이다. 가정은 “사랑의 실질적인 원천”이며 “중단 없는 사랑의 노고를 통해 창조된다.” 사랑의 노고가 부재할 때 가정은 증오의 소굴이 된다. “아버지는 자식의 적이 되고 자식은 아버지의 적이 된다.” 가장 가까워야할 부자 관계에 생긴 틈은 인간의 실존과 역사에 생기는 모든 균열의 원형이다. 이 ‘틈’이 메워지지 않을 때 파열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된다.

‘아버지’가 해야하는 도리는 무엇인가

도스토옙스키는 19세기 후반 러시아에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던 무신론을 ‘아버지 신’에 대한 아들들의 반항으로 생각했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했지만, 도스토옙스키는 분노한 급진주의자 아들들이 ‘신을 죽였다’고 생각했다. 부자간의 반목은 정치 현실에서 결국 암살로 폭발했다. 전통적으로 러시아 민중은 황제를 ‘아빠, 아버지’(바추슈카) 라고 불렀다. 소설이 단행본으로 출간되고 불과 석 달 뒤에 러시아 민중의 ‘아빠’ 차르 알렉산드르 2세는 젊은 인민주의자들의 손에 암살당했다.

도스토옙스키는 ‘카라마조프 가족’을 ‘우연한 가족’이라 불렀다. 사랑도 유대도 없이 그저 어쩌다 보니 피가 섞여 가족이 된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다. 아버지와 아들 모두 여기에 책임이 있다. 아버지가 아버지로서 가져야만 하는 “보편적인 관념”을 완전히 상실할 때 아들의 머릿속에는 ‘못된 아버지는 죽어도 싸다’라는 생각이 들어오게 된다. “모두가 아버지의 죽음을 원하고 있어요.”

아버지에겐 아버지의 도리가 있고 자식에겐 자식의 도리가 있다. 물론 아버지 책임이 먼저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자식 된 도리’를 물으려면 아버지가 먼저 도리를 다 해야 한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드미트리의 변호사는 “아버지란 위대한 이름이며 소중한 호칭”이지만 “아이에 대한 의무를 다 한 사람만”이 아버지라 불릴 자격이 있다고 외친다. 여기서 아버지란 물론 그냥 아버지가 아니다. 한 살이라도 더 먹고, 한 개라도 더 가지고, 한 자라도 더 배운 사람이 곧 아버지다. 아버지의 의무란 무엇일까.

석영중 고려대 노문과 교수
고려대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에 러시아 정부로부터 푸시킨 메달을 수여받았으며, 제40회 백상번역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자유,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배운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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