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景氣 대신 복지 선택한 내년 예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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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부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복지와 국방 분야 지원은 늘리는 대신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SOC)시설과 산업.중소기업 투자는 대폭 줄이는 내용의 내년 예산안을 확정했다. 씀씀이를 최대한 줄여 2년 연속 적자보전용 국채발행이 없는 균형예산을 짰다는 점에서 정부의 균형재정의지는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우리 경제가 성장잠재력 잠식을 우려할 정도로 깊은 침체의 늪에 빠져 있는 현실을 직시할 때 정부가 복지확대에 집착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하는 재정의 역할엔 너무 소홀한 게 아닌가 걱정스럽다.

정부는 DJ 정권부터 복지 예산을 크게 늘려온 데 이어 내년에는 다시 부문별로는 최고인 9.2%를 증액했다. 보육 지원은 44.5%나 늘었다. 이와는 반대로 산업.중소기업 등 경쟁력 확충을 위한 투자는 11.2% 줄였다. 소외 계층에 대한 배려는 필요하다. 하지만 일자리 창출 없이 실업과 빈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이는 경기 회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할 때 정부의 선택은 내년 총선을 의식한 것이거나, 아니면 너무 근시안적인 게 아닌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방비도 8.1%나 늘었지만 정부가 목표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3%에는 못 미친다. 그나마 주한 미군 재배치 관련 현금 예산은 1천억원에 불과하다. 미군 재배치가 본격화할 경우 막대한 이전비에다 국방력 유지를 위해 수조원이 필요한 점을 감안할 때 국방비는 앞으로 우리 살림에 큰 부담이 될 것 같다.

정부가 균형재정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 뒤에 숨겨진 국민부담 증가도 무시하지 못할 부문이다. 국민 1인당 세(稅)부담이 3백18만원으로 높아졌고 조세부담률도 22.6%에 이르고 있다. 소득은 제자리걸음에 세부담만 는다면 국민, 특히 봉급생활자의 어깨는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이 모두가 국회 심의의 몫으로 여야는 예산의 낭비요소를 철저히 찾아내되 행여 총선을 의식한 예산따내기 경쟁같은 구태에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