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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러밴 깡패"란 트럼프···金씨 사진 한장에 거짓 밝혀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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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두라스 출신 이민자 메사와 5살짜리 쌍둥이 두 딸이 멕시코 국경도시 티후아나에서 미국 국경수비대의 최루탄을 피해 달아나고 있다. 한국인 사진기자 김경훈 씨가 찍었다. [로이터=연합뉴스]

온두라스 출신 이민자 메사와 5살짜리 쌍둥이 두 딸이 멕시코 국경도시 티후아나에서 미국 국경수비대의 최루탄을 피해 달아나고 있다. 한국인 사진기자 김경훈 씨가 찍었다. [로이터=연합뉴스]

최루탄 연기를 피해 도망을 가는 한 여성과 엄마의 양 손을 꼭 잡은 기저귀 차림의 아이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캐러밴을 악덕한 깡패로 묘사했지만, 사진 속 캐러밴은 평범한 모습이었다.

엄마가 입고있는 옷이 작은 이유는… #“첫째 아들과 메신저 연락처 교환해” #“내 역할은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캐러밴의 현실을 보여주며 ‘로이터가 선정한 올해의 사진 100’에 선정되는 등 전세계에 반향을 일으킨 이 사진은 한국인 김경훈(44) 로이터 사진기자의 작품이다. 이 사진이 보도된 후 김 기자에겐 워싱턴포스트(WP) 등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고 한다. 28일 김 기자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당시 급박했던 현장 이야기를 들어봤다.

캐러밴 취재를 하게 된 경위는
내가 몸담고 있는 로이터에선 글로벌 이슈가 있으면 팀을 만들어 각지로 파견을 보낸다. 멕시코시티에 며칠간 머물던 캐러밴들이 다음 목적지로 떠나는 시간에 맞춰 지난 14일(현지시간) 멕시코시티로 갔다. 25시간 차를 타고 나바후아라는 도시에 갔고, 그곳에서 멕시코·미국 국경지대인 티후아나까지 걷는 캐러밴들을 밀착 취재했다. 티후아나에 도착한 건 21일이다. 관찰자의 입장으로 취재를 했고, 몇몇 보도처럼 생활을 같이한 건 아니다. 
미국 국경수비대가 최루탄을 던진 상황은 어떤 상황이었나
캐러밴들이 시위를 한건 맞는데, 이들이 국경의 장벽 쪽으로 이동한 건 사전에 조직적으로 기획된 건 아닌 걸로 보였다. 당시엔 경찰과 충돌도 없었다. 전체 상황을 다 보진 못했지만 국경지대 쪽에서 남성 두 명이 담 벽 밑에 쌓인 흙을 파고 있는 장면을 보고 있는데, 2~3분 후 ‘쉭’하는 소리가 나면서 최루탄이 미국 쪽에서 날아왔다. 다시 다가가면 다시 최루탄을 쏘고 캐러밴은 뒤로 물러나고, 이런 상황이 30분 간격으로 3~4번 반복됐다. 마침 바람도 미국에서 멕시코 방향으로 불고 있을 때라, 캐러밴들은 도망가도 계속 최루탄 연기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헬멧과 방독면을 챙겨갔지만 미처 쓰지 못하고 훈련된 기자로서 본능에 따라 셔터를 눌렀다. 최루탄 연기 때문에 나도 눈물이 났다.
그때 촬영한 모녀의 사진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에도 굉장히 중요한 사진이 될 것 같았다. 사진 속 캐러밴은 이민자가 남자라는 고정관념과 다르게 여성과 아이였고, 최루탄 연기와 국경 장벽이 한눈에 보인다. 캐러밴의 상황을 한 장면으로 설명해준다. 사진 속 여성이 ‘겨울왕국’의 엘사 옷을 입고 있는데 8살짜리 내 딸이 좋아하던 캐릭터라 딸 생각도 많이 났다.
멕시코 국경도시 티후아나에서 한 소녀가 캐러밴을 막기위해 설치한 철조망 앞에 서 있다. 이 사진 역시 김경훈 기자가 촬영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멕시코 국경도시 티후아나에서 한 소녀가 캐러밴을 막기위해 설치한 철조망 앞에 서 있다. 이 사진 역시 김경훈 기자가 촬영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사진 속 가족은 어떤 사람들인가
추가 취재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인데, 온두라스에서 온 마리아 메사(40) 가족으로 남편은 미국 샌디에이고에 있다고 했다. 사진 속 여자아이들은 5살 쌍둥이고, 그 외 14살 큰아들, 12살 둘째 딸, 3살 막내아들이 있다. 사진을 찍은 직후 그 모녀를 따라갔을 때 한 아이가 발바닥을 가리키며 울고 있었다. 달리면서 신발이 벗겨진 거다. 내가 찍은 다른 사진에는 메사 옆에 비어있는 유모차도 보이는데, 막내아들의 유모차라고 했다. 도망가면서 결국 그 유모차는 버리고 왔다고 한다. 
추후 그 가족을 만나 어떤 대화를 나눴나
찾아와줘서 고맙다고 하더라. 아이들이 닭고기를 먹고 싶다고 해 따로 식사도 했다. 메사가 입고 있던 옷은 굉장히 작아 보이는데, 임시 쉼터에서 공짜로 나눠준 옷이라고 하더라. 큰아들과 왓츠앱(메신저)아이디를 교환하며 “나중에 미국에 가서 영어 배우면 꼭 연락하라”고 했다. 아이들은 밝았지만 계속 콜록거렸고, 한 아이는 수두에 걸린 상황이었다.
멕시코 국경지대에서 캐러밴 밀착취재를 한 로이터 김경훈 기자. [사진 김경훈기자]

멕시코 국경지대에서 캐러밴 밀착취재를 한 로이터 김경훈 기자. [사진 김경훈기자]

언론에 보도되는 캐러밴과 실제 캐러밴은 어떻게 다른가
흔히들 캐러밴이 일자로 쭉 줄 서서 국토대장정하듯 걸어간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작은 무리를 지어 이동하고 저녁에 다시 모여 함께 저녁을 보낸다. 저녁엔 체육관을 임시 쉼터로 만든 곳이나 인근 마을에서 쉬기도 한다. 또 이들이 걷는 고속도로도 우리나라의 고속도로 개념이 아니라 일반 국도를 걷는다고 보면 된다. 때론 히치하이킹을 해 차를 얻어타도 하는데 우리나라 대형 덤프트럭 두세대를 이어 놓은 듯 크다. 사실 멕시코에선 캐러번 문제가 수십 년 동안 계속됐다.
취재 현장도 굉장히 열악했을 것 같다
취재 기간 동안 차에서 자기도 했다. 캐러밴 임시 쉼터는 기자들에게 하루에 단 두 번 출입이 허용되는데 그 때마다 가서 최대한 캐러밴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기 위해 노력했다. 
직접 만난 캐러밴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나
대부분 온두라스에서 온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공통적으로 그저 나은 삶을 살고 싶고, 자녀들에게 더 좋은 삶을 살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또 내가 만난 10대 중엔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거의 없었고, 가족들이 갱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굉장히 많았다. 인터뷰 후 이름을 적어 달라고 해도 이름을 적지 못하는 문맹자도 꽤 있었다. 그들은 내가 중국사람인줄 알고 ‘재키 찬’, ‘브루스 리’라고 불렀다.
혹시 우리나라 난민문제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내가 직접 제주도에서 난민들을 취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사진 전시 등 향후 계획은
특별한 계획은 없다. 99년부터 기자 생활을 시작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있는 그대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보여준 건 여러 문제들 중 일부일 뿐이다. 독자들이 여러 사진을 접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게 맞고, 난 그걸 도와줄 뿐이다. 당분간 이 일은 계속하겠지만, 곧 일반인들이 사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책을 출판할 예정이다.

김지아 기자 kim.j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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