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소득주도 성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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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호 34면

소득은 일자리에서 나온다. “소득은 노동의 결과”라는 얘기다. 누구나 다 아는 세상의 이치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은 이와 거꾸로 가는 양상이다. 마치 말 앞에 마차를 세워 놓고 “달리라”는 격이다. 과연 마차가 꿈쩍이나 할까. 하지만 이 정책이 이 정부 들어 1년 6개월째 강행되면서 민생이 벼랑 끝 위기를 맞고 있다. 최대 피해자는 이 정책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가계소득을 늘려주겠다고 했던 저소득층으로 드러나고 있다.

‘소득하위 20%’ … 정부 돈 60만원, 번 돈 47만원뿐 #가난한 사람 더 가난하게 만드는 정책실험 멈춰야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이미 파산했다는 것은 새로운 뉴스도 아니다. 문제는 이 정부의 정책실험이 국민 세금은 세금대로 낭비하면서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날려버리는 데 그치지 않고 이들을 빈곤의 늪으로 밀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제 통계청이 발표한 3분기 가계소비동향이 그 현실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소득하위 20% 가구는 복지수당 등이 늘어나면서 정부에서 받은 돈이 일해서 번 돈을 크게 앞질렀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일자리가 줄어들어 소득이 감소하자 막대한 재정을 쏟아부어도 빈곤층 소득이 줄어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정책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최저임금 과속 충격은 취약계층의 일자리에 직격탄을 날렸다. 올 들어 도·소매, 음식·숙박업, 사업시설 관리 등 3대 업종에서만 일자리 29만개가 없어졌다.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한 영세 자영업자들이 알바를 비롯한 임시·일용직 등 취약계층부터 잘라내면서다. 이 여파로 소득하위 20% 가구는 월 소득 중 일해서 번 돈이 47만8900원으로 1년 전보다 14만원 줄었다. 반면에 복지수당 등 나라에서 주는 돈은 1년 전보다 10만원가량 늘어 60만4700원으로 불어났다. 이는 경제 파탄에 빠진 그리스와 남미 국가를 연상시킨다. 이들 국가는 현금성 복지는 재정을 축내고도 가난을 구제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어디 그뿐인가. 빈곤층의 국가 의존도가 높을수록 빈부 격차는 오히려 확대된다. 이 정부에서 그동안 일자리 확대를 겨냥해 투입한 세금은 54조원에 달한다. 그런데 소득하위 20% 가구의 소득(131만7600원)은 1년 전보다 7% 줄어들고, 상위 20% 가구(973만5700원)는 8.8% 증가했다. 두 계층 간 소득배율은 5.52에 달해 11년만에 최악이 됐다. 청와대는 “경제 체질이 바뀌는 진통”이라며 “연말까지 기다려달라”고 했지만 그런 조짐은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어제 “한국의 고용대란이 2020년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설상가상으로 재정 수요가 늘어나면서 세금·사회보험료 등으로 나가는 돈이 처음으로 가구당 100만원을 돌파했다. 그만큼 가처분소득이 줄어드니 소비가 위축되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불가피해졌다.

이쯤 되면 소득주도 성장은 즉각 폐기돼야 한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귀를 막고 있다. 어제 대통령비서실 소속 비서관들이 비공개 워크숍까지 열면서도 “차질없이 예정된 정책을 추진해 국민에 성과를 보여주자”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정책 방향 자체에 대한 본질적 고민은 없었다. 아무리 고통이 크더라도 잘못된 길에 들어섰으면 방향을 틀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에게 보여줄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용기가 필요하겠지만 빠를수록 좋다. 이제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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