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 형식에 발목 걸린「합의」|이철호<사회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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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서울지하철 노사분규 해결을 위한 서울시와 노조 측의 협상이 서명 형식문제로 막만에 결렬됐다.
분규재연 15일만에, 노조 측의 무임승차 강행 3일째 되는 날 아침 어렵게 어렵게 도달한 합의는 13시간 15분간의 장시간 협상이 보람도 없이『그 동안 단체협약을 안 지켜 온 김명년 지하철 공사 사장과는 결코 자리를 함께 할 수 없다』는 노조강경파의 말 한마디로 마지막 걸림돌에 발목이 걸리고 말았다.
이에 따라 시민들은 또 하루를 눈치보며 무임승차하는, 양심의 심판대에 내몰리게 됐다.
이날 협상은 서울시나 공사 측이 노조 측의「억지」주장을 받아들 일 수 없다는 종전의 방침에서 급선회 한데서 타결의 실마리가 잡혔다.
이는 7일 오후 조정부총리 주재로 열린 14개 노동관계 장관회의에서『서울 지하철 노사분규는 공사 측이 지난해 노사간의 합의각서 내용중 미 시행 사항인 지하철 근무수당의 기본급 화 문제를 우선 이행해 해결하라』는 방침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결렬직전 이른 새벽녘에는 회의장 문틈으로 웃음 섞인 부드러운 목소리가 간간 흘러나오고 합의 문 작성을 위해 타자수까지 불러들이는 등 긴장됐던 회의장 분위기가 화기애애한 합의의 장으로 바뀌는 듯 했다.
그러나 내용 아닌 마지막 서명의 형식에서『서울시장과 직접 담판을 벌인 것인데 공사 측과 합의조항에 서명하게 된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한 회의는 결국 공사 측과 단독 협상한 골밖에 더되느냐』는 협상대표도 아닌 노조 측 배석 자 한사람의 말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회의장 분위기는 일변했다. 이 순간 분위기가 한겨울 냉기만큼 싸늘하게 굳어져 버렸다고 서울시 측 한 관계자는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뒤따라 줄지어 자리에서 일어서는 노조 측 대표들을 보며 정윤광 노조위원장도 내키지 않는 듯 발걸음을 돌렸다』고 전했다.
그러나 정 위원장은『오후에 다시 보자』며 마지막 여운을 남겼다.
깨끗한 타자글씨로 빼곡히 작성된 합의 문도 서명 란 만 동그라니 남긴 채 찢어져 휴지통에 들어간 현장.
분규는 합의조항 하나하나 보다도 노사간의 근본적인 신뢰회복이 우선되어야 할 해결책이라는 교훈을 다시 되새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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