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주눅들지 않는 '사커루' 투혼 태극호 배워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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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로테르담 시내는 오전부터 오렌지색으로 물결쳤고, 5만1000명 규모의 페예노르트 경기장 관중석도 온통 오렌지로 물들었다. 호주 응원단도 1000명을 넘었지만 오렌지색 바다에 떠 있는 한 조각 배에 불과했다.

'오렌지' 관중의 위세는 대단했다. 네덜란드에 불리한 판정이 나올 때마다 일제히 일어서서 귀가 찢어질 듯 요란하게 호각을 불어댔다. 반대로 호주 선수에게 경고가 주어질 때는 장내가 떠나갈 듯 환호가 터져나왔다. 호주 응원단은 홈 관중이 잠시 조용할 때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며 '게릴라식' 응원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일방적 분위기 속에서 거스 히딩크가 이끄는 '사커루' 사단은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맞섰고, 결정적인 위기 순간엔 거친 태클로 막아냈다. 0-1로 뒤지던 후반 페널티킥으로 동점을 만들자 오렌지의 거센 물결은 이내 잦아들었고 호주 응원단은 살판이 났다. 팽팽한 동점 상황이 이어지자 후반 중반 이후엔 관중이 게임에 집중하느라 조직적인 응원을 거의 하지 못했다. 호주 대표팀의 투지가 일방적인 응원을 이겨낸 것이다.

홈팀이나 마찬가지인 프랑스.스위스와 맞붙는 한국이 이런 분위기에서 경기를 치러야 할 것은 뻔하다. 한국 응원단 규모 역시 기껏해야 1000명 정도일 것이다. 한국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오렌지 물결에 압도돼 네덜란드에 0-5로 대패한 악몽이 있다. 현 대표선수 중 98년의 경험을 한 선수는 한 명도 없다.

월드컵 6회 연속 진출에 직전 대회 4강 진출국인 한국은 독일 월드컵에서 4년 전의 영광이 홈 텃세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할 과제를 안고 있다.

태극전사들도 호주팀 못지않은 투지와 기백으로 원정팀의 불리함을 극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로테르담=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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