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청와대, 현실을 직시하고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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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몸이 아프면 정확한 진단부터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병을 키우고, 나아가 멀쩡한 다리를 자르는 의료사고까지 발생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경제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진단이 정확해야 거기에 유효한 정책수단을 쓸 수 있다. 그래서 정책당국의 경기 진단은 매우 객관적이고 정교해야 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현실과 동떨어진 경기 진단과 발언이 꼬리를 물고 있다. 특히 이런 ‘현실 이탈 진단과 발언’이 청와대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기업 실적 나쁘고 가계부채도 비상 #그래도 청와대는 장밋빛 인식 남발 #실상 덮다 위기 키운 과거 기억해야

그제 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자동차는 생산이 다시 증가하고, 조선 분야도 세계 1위를 탈환했다”며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는 말처럼 기회를 살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달라”고 했다. 그 근거로 청와대는 자동차산업의 지난 8~10월 생산 실적이 전년 동기 대비 6.6% 늘어나고, 조선업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지난달 44%로 세계 1위 자리를 탈환한 것을 제시했다. “경제는 심리”라는 말처럼 이런 발언은 국민에게 희망을 불어넣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제비 한 마리 보고 봄이 왔다고 해선 곤란하다. 지금 청와대의 인식과는 달리 한국의 자동차·조선은 벼랑 끝 위기 상황에 빠져 있다. 국내 자동차 생산량은 지난해 인도에 이어 올해는 멕시코에도 밀려 세계 7위로 전락할 처지에 몰렸다. 현대차는 3분기 영업이익이 76% 감소한 어닝쇼크에 빠졌고, 이 여파로 1~2차 협력사들은 부도 도미노 위기에 몰리고 있다. 조선 역시 수주량이 늘어났다 해도 2007년의 20%에도 못 미칠 정도다. 더 크게 보면 스마트폰·반도체까지 포함해 한국 산업 전체가 경쟁력 약화와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로 흔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단발적 근거를 놓고 마치 우리 경제가 갑자기 활력을 되찾기나 한 것처럼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청와대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청와대 참모들은 지난 5월에도 대통령에게 현실과 괴리된 근거를 제시하며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발언하게 했다. 나중에 보니 자영업자를 쏙 빼놓고 통계를 뽑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식으로 정책을 집행하니 고용참사의 끝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 와중에 청와대 참모는 “경제 체질이 바뀌는 진통”이라고 했다. 현실을 외면한 ‘눈 가리고 아웅’이 아니면 무엇인가.

청와대 경제참모들은 역대 정부에서도 경제 실상을 호도하다 더 큰 위기를 불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김영삼 정부에서는 경제지표가 온통 빨간불로 바뀌고 있는데도 “펀더멘털은 문제없다”고 했다. 참모들이 대통령에게 실상만 제대로 보고했다면 외환위기를 피했을 것이다. 지금 한국 경제는 기업 실적 악화로 2%대 저성장 터널에 빠져들고 금리가 뛰는 와중에 3분기 가계부채는 1500조원을 돌파했다. 경제는 온통 지뢰밭이다. 이럴 때일수록 정확한 현실 인식이 앞서야 한다. 그래야 위기에 빠진 한국 경제의 비상구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