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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O 기준 맞추려 해고자도 노조 … 경영계 “기업 활동 저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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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 산하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의 공익위원이 20일 내놓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과 관련된 방안에는 노동계의 주장이 거의 담겼다. 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보호 협약(제87호)에 관해서다. 노사 합의에는 실패했다.

경사노위, 1차 개혁안 발표 #소방공무원 노조, 전교조 합법화 #노사 이견 커 공익위원안 내놔 #2차 땐 사측 요구 대체근로 논의 #시행되려면 사회적 대타협 필요

이번 방안은 1차 논의 결과물이다. 1차 논의에선 노동계가 제안한 노조 가입 범위 확대 등을 다뤘다. 2차 논의는 경영계가 낸 의제를 다룬다. 대체근로 허용과 같은 글로벌 스탠더드형 제도 개선 방안이다. 시한은 내년 1월 말까지다. 노동계가 반대하고 있어 2차 논의도 노사 합의 대신 공익위원안을 도출하는 선에서 봉합될 수 있다. ILO 협약 비준을 둘러싼 논란이 장기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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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1991년 ILO에 152번째로 가입했다. 다만 일부 협약의 비준을 유보했다. 협약 비준은 회원국 사정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당시 회장단 회의에서 “노사관계와 법·제도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근접했을 때 비준하는 것이 맞다”고 결론지었다. 한국노총도 “국내외 노동현실의 문제점을 고려해 제87호 등의 비준은 상당기간 유보돼야 할 것으로 본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이 기조는 한동안 유지됐다. 그러다 현 정부가 ILO 협약 비준을 꺼내들었다. 7월 20일 경사노위에 급하게 제도개선위가 꾸려졌다. 1단계 논의 후 나온 공익위원안은 노동계 요구대로 “누구나 노조를 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이다.

해고자와 실업자의 노조 가입이 가능해지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합법 노조가 된다. 현재는 해고자가 조합원에 포함돼 ‘노조 아님’ 판정을 받은 상태다. 또 외부인이 종업원의 임금·복지 수준을 결정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하고, 경영을 간섭하는 게 사회 통념상 허용될지 미지수다.

공익위원은 공무원의 노조 가입 범위를 현행 6급 이하에서 5급 이상으로 확대하도록 권했다. 고위 공직자까지 노조의 영향권에 편입되는 셈이다. 공공개혁이 어려워질 수 있고,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될 위험이 있다.

소방공무원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조를 결성해 대항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라는 주문도 논란거리다. 소방관이 파업하면 화재와 같은 재난 상황이나 위급환자 수송 등에 혼란이 일 수 있다.

노조 전임자 확대 권고는 시대 역행적 조치라는 비판이다. 노조 간부가 일은 안 하고 임금만 받는다는 비난이 일자 2010년 근로시간 면제 제도를 도입했다. 일정 시간은 노조 활동만 해도 일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공익위원은 이 시간을 확대하도록 권했다. 사실상 노조 전임자를 늘리라는 얘기다. “노조의 자주성을 해치고 제도의 취지를 훼손하는 발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그렇다고 1단계 논의 결과가 그대로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 향후 진행할 2단계 논의 결과를 종합해 사회적 대타협이 있어야 ILO 협약 비준을 둘러싼 법·제도 개선 방안의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2단계 논의 과제는 ILO 협약에 걸맞은 선진국형 대안이다. ▶대체근로 허용 ▶부당노동행위 폐지 ▶단체협약 유효기간(2년) 연장(4년) ▶사업장 점거 금지가 골자다. 한국에는 없고, 선진국은 시행 중인 제도다.

대체근로는 파업 때 외부에서 인력을 충원해 공장 가동을 계속하는 조치다. 대체근로를 금지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사업장 점거 금지도 마찬가지다.

부당노동행위는 미국과 일본을 제외하곤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미국은 사용자뿐 아니라 노조의 부당노동행위도 제어한다. 일본은 부당노동행위에 따른 처벌조항이 없다. 선언적 의미라는 얘기다.

김영완 경총 노동정책본부장은 “노동계의 요구만 다룬 1차 논의 결과는 별 의미가 없다”며 “협약을 비준하려면 경영계가 요구한 2차 논의 의제가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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