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신나는기업들] "우리는, 공인 축구공 '팀 가이스트' 외피 만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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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 이재용(업무총괄부장), 김성진(기술연구소장), 이해성(대표이사), 이강우(영업3부장)

"스타가 아닌 플레이어를 만든다고 설명하면 될까요?"

합성피혁 등을 만드는 중견기업 ㈜덕성의 이해성(64) 사장은 회사의 성과를 거스 히딩크 감독의 축구 철학을 빗대 표현했다. 이 회사는 2006년 월드컵 공인 축구공 '팀 가이스트(Team Geist:팀 정신)'의 외피를 아디다스에 독점 공급한다. 조만간 전 세계인의 시선을 모을 축구공의 반들반들한 표면은 모두 '메이드 인 코리아'이다. 2002년 월드컵 공인구 피버노바의 외피도 이 회사가 만들었다.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축구공 업계에선 '월드컵 챔피언'인 셈이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월드컵 축구팀 부동의 미드필더인 박지성 선수의 아버지가 한때 이 회사를 다녔다는 점이다.

덕성은 올해로 꼭 40년이 된 회사다. 이희덕 회장이 1966년 회사를 세워 국내 최초로 합성피혁을 생산했다. '레자'로 흔히 불리는 인조 가죽이 그것.'레자'는 가죽을 뜻하는 영어(Leather)의 일본식 발음이다. 70년대에는 가발, 80년대엔 신발을 만들었고 90년대 들어 축구.농구공 등에 들어가는 합성피혁을 만들어 수출했다. 2000년에 회사는 또 변신했다.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기 위해 설비를 뜯어고쳤다.

90년부터 17년째 회사를 이끌고 있는 이 사장은 일본이 고급 축구공에 관심을 두는 것에 주목했다. 한.일 월드컵 1년 전인 2001년부터 월드컵 공인구 시장 공략에 나섰다. 당시 아디다스는 오스트리아.일본.대만.태국 업체를 대상으로 품질 테스트를 하고 있었다. 회사는 김성진 기술연구소장을 독일로 보내 제품 개발을 추진했다. 축구공 외피는 보기와는 달리 만들기 쉽지 않다. 여러 기술이 들어가야 한다. 공기.잔디와 마찰이 적도록 코팅해야 하고 방수도 완벽해야 한다. 옷감 원단 모양의 외피 ㎡ 당 무게.두께의 오차가 각각 20g.0.05㎜이어야 합격한다. 이렇게 만들어져 납품된 외피는 14개의 조각으로 디자인돼 팀 가이스트의 표면을 이룬다. 개발팀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시제품을 만들었고 아디다스는 3개월 동안 테스트한 뒤 피버노바 외피 생산을 맡겼다. 이강우 영업부장은 "10년간 아디다스와 거래하던 오스트리아 업체가 반발했지만 결국 품질 싸움에서 이겼다"고 말했다. 이후 2004년 유럽 챔피언스리그, 2006년 독일 월드컵까지 외피를 독점 공급하면서 일본.대만.태국 업체를 무릎 꿇렸다. 축구공 외피 안쪽은 스펀지층.내피층.공기주머니 등으로 구성되는데 이는 다른 업체가 만든다.

덕성은 박지성 선수와 인연이 있다. 박 선수의 아버지 박성종씨는 94년까지 10여 년간 덕성에서 일했다. 그래서 회사 직원 상당수가 박 선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수원시가 지난해 '박지성 거리'라고 이름 지은 수원시 영통구의 도로는 덕성 본사와 인접해 있다. 덕성은 지난해 1000억원의 매출(2개 계열사 포함)을 올렸다. 신발.소파 등에 쓰이는 합성피혁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반도체 세척용 화학 제품과 초전도 실험 기기 등도 만든다. 아디다스의 외피 주문량은 공개하지 않기로 해 말해 줄 수 없다고 했다. 회사 관계자는 "팀 가이스트의 시중 가격이 15만원인 만큼 외피의 수익성은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수원=김승현 기자 <shyun@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s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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