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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도 통영 집이 생기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10호 34면

일러스트레이터 밥장의 통영놀이 

여행하는 일러스트레이터로 먹고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해외를 자주 다닌다. 두 가지를 크게 느끼는데, 대한민국이 참 잘 사는 나라라는 것과 우리나라 물가 경쟁력(!)이 대단하다는 사실이다.

며칠 전 촬영 때문에 이란에 다녀왔다. 밥값과 교통비가 대략 5분의 1 정도였다. 석류와 과일, 양갈비는 매우 훌륭하고 맛있었다. 이웃나라인 투르크메니스탄을 여행하는 친구는 물 한 병에 70원이라며 한 술 더 떴다. 잘 사는 만큼 비싼 거고 비싼 만큼 잘 산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란에서의 삶이 정확히 우리나라의 5분의 1수준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대한민국, 특히 서울에서 버티려면 세계적인 수준으로 비용을 내야한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얼마 전 통영 ㅊ 아파트로 이사 온 친구가 가볍게 집들이나 하자며 초대했다. 무주 사는 친구가 놀러오면서 두고 간 햇사과 몇 알을 챙겼다. 막 공사를 끝내고 이사를 와서 그런지 냉장고와 이불 몇 채, 의자 몇 개가 어색하게 놓여 있었다. 방 두 개에 화장실, 거실과 부엌이 연결된 공간이 전부인 작은 아파트이지만, 앞뒤 창 밖으로 충렬사와 서호시장까지 시원하게 보여서 그리 좁게 느껴지진 않았다. 와인과 맥주를 홀짝거리면서 어떻게 집을 구하고 이사까지 왔는지 한참 수다를 떨었다.

ㅊ 아파트는 충렬사 아래에 자리 잡은 3동 5층짜리 아파트다. 1976년에 처음 입주한 아파트라 엘리베이터와 지하주차장은 따로 없지만 잘 관리해서 무척 깔끔하다.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금연 아파트로 운영하기에 흔한 담배꽁초 하나 보이지 않는다. 만약 몰래 담배 피우다가 걸리면 아파트 회장님의 불호령은 각오해야 한다.

충렬사와 서피랑, 서호시장과 여객선터미널은 물론 강구안과 통영운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북포루까지 걸어갈 수 있다. 우연히 빈 집이 나와 보러 갔는데, 화장실 고치고 수리를 좀 하면 근사하게 변할 것 같았다. 가격도 서울에 비하면 몹시 저렴했다. 마침 과학 강의를 준비하느라 서울에서 온 친구 ㅇ에게 아파트 이야기를 했고 무척 관심을 보였다. 그 뒤로 친구들과 함께 통영에 왔고 그 때마다 아파트에 들러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몇 달 뒤 ㅇ과 서울 사는 친구 다섯이 돈을 모아 집을 산 뒤 몇 달동안 대대적으로 수리를 하고 며칠 전 이사를 마쳤다. 통영에 이사 온 소감을 물어보았다.

“서울에서는 연남동에 사는데 동네는 좋지만 내 집은 좁고 비싸. 엄밀히 따지면 내 집도 아니지. 아주 비싼 월세를 내고 빌린 거니까. 집 구입부터 수리까지 여섯 명이 똑같이 돈을 냈어. 니 집 네 집이 아니라 진짜 우리집이 통영에 생긴 거지. 여섯 명이 나눠내니까 6분의 1 비용으로 여섯 배 재산이 생긴 기분이 들어. 이런 셈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서울 친구 여섯 모두 통영살이는 처음이라 가족이나 친척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밥 한끼, 술 한 잔 편하게 나눌 친구들, 말 그대로 식구(食口)들이 있다. 친구들이 통영에 우리집을 마련하기로 결심하는데 저렴한 부동산과 창 밖으로 펼쳐지는 탁 트인 경치도 단단히 한몫을 했다. 나도 일 때문에 서울에 머물다 통영에 오면 고향에 왔다는 느낌보다는 되레 해외여행을 떠나온 기분이 든다. 서울의 비싼 물가를 여기서도 진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이러저러한 장점과 더불어 식구가 는다. 통영살이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작가ㆍ일러스트레이터ㆍ여행가. 회사원을 때려치우고 그림으로 먹고산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호주 40일』『밤의 인문학』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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