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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톱」해도 너무 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최근 우리 주변에는 이른바 「고스톱」이라는 화투놀이가 도에 지나칠 정도로 성행하고 있다.
요즘의 고스톱은 놀이방법도 단순한 오락의 범주를 벗어나 도박성을 띠고 있는데다가 용어마저「싹쓸이」니「설사」니 하여 살벌하고 속악하기 그지없다.
10여년전만 해도 이런 화투놀이는 명절 같은 때 오랜만에 만난 일가 친척들이 둘러앉아 잠시 즐기거나 아니면 상가 같은데서 밤색을 할 때 심심파적으로 하는게 고작이었다.
그런데 근년에 와서는 공무원·회사원·상인·운전사·가정주부 할 것 없이 서너명만 모여 앉았다 하면 으례 벌이는게 고스톱 판이며, 심지어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크게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고스톱을 하는 장소만 해도 그렇다. 전에는 되도록 남의 눈에 잘 안 띄는 뒷골방 같은 곳을 이용하곤 했는데 요즘은 대로변의사무실·주차장은 물론 음식점·목욕탕, 심지어는 등산로나 골프장 같은데서도 버젓이 고스톱 판을 벌여 놓고 희희낙락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보다 더한 목불인견이 또 있을까.
고스톱이 언제 어디서 생겼고, 어떻게 우리나라에 들어와 이렇게 열병처럼 번지게 되었는지 따질 생각은 없다. 문제는 오늘날 위로는 사회의 지도급 인사에서부터 아래로는 어린 청소년들에 이르기까지 광범하게 확산되고 있는 이 사회적 「집단중독」현상을 정말 이대로 방치해도 괜찮을까 하는 점이다.
알콜이나 마약과 마찬가지로 도박에도 중독현상이 있다. 미국정신의학협회는 지난 80년부터 이 도박중독증을 정신질환의 하나로 분류, 정신과치료를 받게 하고 있다고 한다.
알골이나 마약중독은 그 피해가 환자자신에게 국한되는 수가 많고, 또 금단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환자인지 아닌지를 쉽게 식별할 수 있다. 그러나 도박은 반드시 상대가 있게 마련이고 또 그 대상이 「돈」이기 때문에 피해의 정도가 크다.
그뿐 아니라 금단증상도 없어 중독여부를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고스톱을 즐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이같은 도박중독증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을 것이 뻔하다. 정신과의사들의 말을 들으면 요즘 우리사회에 도박중독증 환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다른 정신질환과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환자라고 인정하지 않으려는데다가 금단현상도 찾아낼 수 없어 그 수를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도박중독은 자칫하면 중증에 빠지기 십상이다.
어떤 호사가의 조사에 따르면 고스톱의 놀이방법은 50가지가 넘는다. 그래서 한때는 어느 고위층의 이름을 붙인 놀이까지 등장했었다.
이런 현상이 의미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사회학자들은 많은 사람들의 일상을 지탱해주는 사회적 공감대가 없고 가치관이 혼미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거기에다 경제일변도로 치달려온 한탕주의적 사고, 병든 정치풍토 때문에「말」을 조심하려는 사회적분위기, 그리고 일정한 원칙이 없거나 있어도 언제나 손쉽게 바꿀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들이 오늘날 고스톱 독균을 사회 전체에 만연시키고 있는 것 같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은채 부끄러운 줄 모르면 심각한 정신질환이다. 그리고 그 중독증이 집단적이고 광범하다는 것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이 개인적·사회적 병리를 고쳐 나가기 위해 고스톱 애호가는 자제의 결단력을 끈기 있게 발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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