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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돈 많으면 전세라도…” 고시원 화재 희생자 父의 눈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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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로 인해 7명의 사망자를 낸 서울 종로구 관수동 국일고시원에서 머무르던 사람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지고 있다. 대부분 경제 사정이 여의치 않아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고시원에 머물던 이들이었다.

9일 새벽 종로구 국일고시원에서 화마에 휩싸여 숨진 희생자 중 한 명인 조모(35)씨의 부친은 10일 새벽 조씨가 안치된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에서 연신 눈물을 흘렸다.

9일 서울 종로구 관수동 국일고시원 화재현장. 이날 화재로 건물 거주자 26명 중 7명이 숨지고 10여 명이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다. [뉴스1]

9일 서울 종로구 관수동 국일고시원 화재현장. 이날 화재로 건물 거주자 26명 중 7명이 숨지고 10여 명이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다. [뉴스1]

부친은 “아들은 수줍음을 많이 타고, 착실하고 거짓말도 할 줄 모르는 아이였다”며 “아들이 서울 올라온 지는 한 8년 정도 됐다. 처음에는 노가다 일을 하다가 우체국 비정규직으로 일했다. 그러면서 고시원 생활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생활이 넉넉지 않아서, 가급적 돈 덜 들이면서 있겠다고 (고시원에서) 생활했다. 돈을 모으려고…참 착실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부친은 “돈이 많으면 어디 아파트를 한 채 사주든지 전세를 한다든지 (해줬을 텐데) 나 먹고살기도 힘들어서…우리 아들이 열심히 노력했다, 발버둥을 친 애다”라며 눈물을 쏟았다. 그러면서 “부모를 잘못 만난 탓으로 고생하다가 이렇게 갔다”며 아들의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소방관들의 도움으로 빠져나오는 데 성공한 정모(62)씨는 2000년대 초반부터 아내와 아들이 있는 부산을 떠나 홀로 서울에서 일하며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해왔다. 6~7년 전부터 국일고시원에 장기 투숙하며 관리비나 전기‧수도세를 따로 내지 않고 40여만원을 월세로 냈다.

정씨는 고시원에 머문 이유에 대해 “괜히 보증금을 걸고 지내기보다 아들도 장가를 가야 하니까 한 푼이라도 절약하려고 그랬다”며 “오피스텔은 아무리 작은 곳도 매달 80만원은 써야 한다. 관리비도 나가고, 수도‧전기세도 전부 따로 내야 한다. 여기는 그런 게 없다”고 설명했다.

정씨는 양손과 얼굴에 화상을 입고 연기를 마셔 시커먼 가래가 있어 한 달가량 입원해야 한다. 그는 숨진 사람이 7명이라는 말을 듣고 놀라며 “다들 자는 중이라 경황이 없어서 그랬던 게 아닐까 싶다”며 안타까워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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