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비 34억 빼돌린 교수, 그 교수 몰래 명품 5억 산 직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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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비 횡령 사건이 발생한 부산의 한 국립대 전경. [중앙포토]

연구비 횡령 사건이 발생한 부산의 한 국립대 전경. [중앙포토]

부산대 교수가 연구비 34억원을 빼돌려 식비나 회의 추진비 등으로 쓴 사실이 수사 결과 드러났다. 교수 지시로 연구비 카드명세를 조작한 회계사무직원은 교수 몰래 자신의 명품백과 옷을 사는데 5억원을 추가로 빼돌린 사실도 확인됐다.

교수 지시로 회계 장부 조작하던 직원, 연구비 5억원 가로채 명품백 사기도 #금정경찰서 “연구비 사비입금 관행이 낳은 폐해…사비입금 허용 규정 없애야”

7일 부산 금정경찰서에 따르면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A씨(54)는 2013년 항노화 관련 연구 프로젝트로 총 120억원의 연구비를 부산시와 공공기관에서 지원받았다. A씨는 해당 연구와 상관없는 회의나 회식비로 연구비를 사용했다. 연구 목적 외로 사용한 비용은 순식간에 불어났다.

겁이 덜컥 난 A씨는 사비입금으로 연구 목적 외 사용한 비용을 채워 넣기로 결심했다. 사비입금이란 연구비 전용 카드를 다른 용도로 쓰더라도 그 금액만큼 채워 넣기만 하면 용인해주는 일종의 관행이다.

A씨는 2013년 4월부터 5년간 산학협력단 회계사무직원 B씨(37·여)에게 연구원의 인건비를 과다 청구하도록 지시했다. 금정경찰서 관계자는 “연구원 13명의 인건비를 과다 청구해 적게는 연구원당 20만원, 많게는 100만원씩 인건비를 가로챘다”고 말했다.

대담해진 A씨는 연구 자재 판매업자 C씨(51)와 짜고 연구 자재를 산 것처럼 연구비 카드를 허위결제했다. 일종의 카드깡이다. A씨는C씨에게 연구 자재 10억원을 산 것처럼 카드를 결제했고, 카드 수수료의 대가로 C씨에게 5억여원을 줬다. 이 과정에 같은 대학 초빙교수 D씨(54)도 가담한 것으로 경찰 수사 결과 확인됐다.

A씨의 지시로 3년 넘게 연구비 카드 내역을 조작하던 회계직원 B씨는 2016년 12월 연구비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연구비 회계 장부를 아무도 관리·감독하지 않는 허점을 이용한 것이다. B씨는 비용정산이 끝난 카드전표의 날짜와 금액을 변조한 뒤 실제로 비용 지출한 것처럼 꾸몄다. 2018년 4월까지 B씨가 빼돌린 연구비는 5억1000만원에 달했다. B씨는 이 돈으로 명품백과 명품의류를 산 것으로 전해졌다. 금정경찰서는 B씨를 구속하고, A,C,D씨는 불구속 입건했다.

지난 5월 서울 관악구 서울대 사회대 광장에서 서울대 학생들이 연구비 횡령 의혹이 제기된 사회학과 H 교수에 대한 파면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월 서울 관악구 서울대 사회대 광장에서 서울대 학생들이 연구비 횡령 의혹이 제기된 사회학과 H 교수에 대한 파면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연구비 카드 관리 규정이 허술한 탓에 연구비 횡령 사건은 수시로 터진다. 지난 3월 한양대 교수 한모 씨는 대학원생의 인건비를 과다 청구하고, 문구점에서 카드깡을 하는 수법으로 6억원을 빼돌려 구속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 7월까지 연구개발비 횡령으로 인한 피해액은 124억8000만원에 달한다. 지난해 1월부터 지난 9월일까지 전국 법원에서 선고된 대학 연구비 횡령 관련 판결은 58건에 달하며 이 가운데 올해 들어 선고된 사건만 22건에 이른다.

이번 사건을 수사한 금정경찰서 관계자는 “연구비의 사비입금 관행을 허용하는 규정을 삭제하고 사비입금 행위가 발생한 경우 관련자들은 연구사업에 참여할 수 없도록 하는 등 강력한 조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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