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주요 금융회사들 이란과 거래 중단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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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이란의 핵 개발과 관련, 유럽의 주요 금융회사들이 미국의 요청을 받고 이란과 거래를 이미 중단했다고 워싱턴 소식통이 밝혔다.

소식통은 "영국의 BSBC 은행, 스위스의 UBS와 크레디트 스위스 은행, 그리고 네덜란드의 ABN AMRO 은행 등이 이란의 개인.법인과의 거래.송금을 중지하고 이란 내 지점 영업도 중단했다"고 전했다. 그는 "미 재무부가 여러 달에 걸쳐 유럽 국가들을 끈질기게 설득한 결과 이들 금융회사가 독자적으로 이란과 거래를 끊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르면 스위스.네덜란드는 과거 미국이 테러 국가로 지정한 리비아 등과 금융거래를 계속하다 수천만 달러의 벌금을 물은 적이 있어 이번 조치에 협조적이라는 것이다.

이에 앞서 뉴욕 타임스는 "미국의 압력을 받은 유럽의 대형 은행들이 이란과 관련 업무를 중단해 사실상 미국의 대이란 경제 제재가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유럽.일본 동원해 북한식 금융제재=워싱턴 포스트도 지난달 29일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유럽 친미 국가들과 일본을 동참시켜 이란의 해외계좌를 폐쇄하고 유럽.아시아의 이란 자산을 동결하는 방안을 마련했다"고 보도했다. 재무부 특별팀이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보고한 문건을 인용해서다.

신문에 따르면 미국은 유엔 안보리를 통한 이란 제재는 러시아.중국의 반대로 성사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안보리 밖에서 동맹국들을 설득해 이란에 직접 금융 제재를 가할 방침이란 것이다. 북한과 거래해 온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을 국제적으로 제재한 결과 북한에 상당한 타격을 줬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이란에도 같은 방식으로 압력을 넣으면 미국으로선 비용을 전혀 들이지 않고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계산했다는 것이다.

?문제점=신문은 미국이 경제 제재를 가할 경우 이란은 산유량 감축으로 맞설 것이며 이에 따라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까지 폭등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란과 큰 규모의 경제 거래를 해 온 일본과 이탈리아가 동참할지도 미지수다. 일본은 국내 소비 석유의 12%, 이탈리아는 9%를 이란에서 수입한다.

부시 대통령은 다음달 방미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에게 이란 제재에 동참하도록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본과 유럽 국가들은 오히려 부시 대통령에게 이란과의 대화를 촉구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지적이다. 신문은 "미국의 대이란 제재 방침은 전 세계를 불행하게 하고, 이란엔 핵 개발을 계속 추진하도록 부추기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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