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Blog] 세계를 삼킨 봉의 '괴물' … 한국영화 스펙트럼 넓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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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100년 묵은 나무가 즐비한 세계 영화의 숲. 거목 사이에서 어느새 불쑥 자란 한국 영화도 부지런히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그 숲속 내밀한 이야기를 중앙일보 영화담당 기자들이 들려 드립니다.

우리 입장에서 볼 때 제59회 칸 영화제 최고 화제작은 봉준호 감독의 '괴물'입니다. 필름마켓에서는 세계 11개국(230만 달러)에 팔려 나갔습니다. 일본에 사전판매(470만 달러)된 것까지 포함하면 수출액이 벌써 700만 달러(약 66억원)! 한국 영화 중 최고 기록입니다. 참고로 순제작비는 110억원이 들었다네요.

언론의 호평도 줄을 이었습니다. "괴물 영화이자 SF스릴러와 코미디, 가족 영화에 정치적 비평까지 곁들인 작품(뉴욕타임스)"으로 "괴수영화 장르의 고전이 될 만하다(버라이어티)"고 평했습니다.

도대체 '괴물'이 이렇게 선전한 이유는 뭘까요. 27일자 NYT 기사는 주요한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즉 봉 감독이 최근 유행하는 '아시안 익스트림(한국.일본.태국 등지에서 만들어진 잔혹한 폭력미학 영화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그의 영화에는 "장도리의 향연, 낚시의 즐거움, 괴이한 섹스가 없다"는 것이죠. 그러고서도 "은유와 잘 계산된 아이디어로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기대할 수 있는 영화적 재미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한국의 대표 브랜드 박찬욱 감독과의 명백한 차별성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올드보이'의 장도리 액션신, 산낙지 먹는 장면, 근친상간적 섹스를 겨냥한 지적인 셈이죠. NYT는 지난 4월 박찬욱 감독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그를 '아시안 익스트림'의 대표주자로 조명한 바 있습니다.

최근 해외 영화제에서 박찬욱과 김기덕이 이룬 탁월한 성취로 인해 해외 영화계는 한국 영화에 대해'센 영화'라는 인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 기왕의 한국 브랜드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이야말로 '괴물'이 칸에서 각광받은 이유라고 봅니다.

그 결과 한국 영화는 또 하나의 얼굴을 추가했습니다. '한국 미학의 장인' 임권택, '유럽 예술영화의 충실한 승계자'홍상수, '아시안 익스트림'박찬욱, 그리고 '독창적 이단아' 김기덕. 여기에 '잘 계산된 블록버스터'라는 새 브랜드를 더한 것이죠.

세계 영화계가 한국 영화에 대해 갖는 가장 큰 놀라움은 도대체 하나의 정체성으로 규명할 수 없는 다양함과 폭이라고 하죠. '괴물'의 호평이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그런 한국 영화의 넓은 스펙트럼을 재확인시켰다는 것일 겁니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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