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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부고 오보 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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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수정
김수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수정 논설위원

김수정 논설위원

익히 알려진 얘기다. 노벨상 창립자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이 막대한 재산으로 노벨 재단을 세우게 된 경위가 신문에 잘못 실린 자신의 부고 기사(obituary)를 읽고 나서라는 것. 노벨은 광산용 다이너마이트를 비롯해 355개의 발명 특허를 보유하며 부를 쌓았다. 1888년 형 루드비히가 사망했는데, 프랑스의 한 신문이 오인해 ‘죽음의 상인이 사망했다’는 타이틀로 “알프레드는 더 많은 사람을 빨리 죽이는 방법을 찾아 돈을 모았다”고 썼다. 그 기사에 참담해진 노벨은 인류를 위해 큰 업적을 남긴 이들을 위한 상을 제정하겠다고 작정했다고 한다.

부고 오보. 언론이 유명 인사들의 사망에 대비해 미리 작성해 둔 기사를 실수로 잘못 내보내면서 일어나는 일이 적잖다. 인터넷의 발달로 오보가 퍼지는 속도와 파급력은 크다. 2008년 8월 블룸버그통신은 투병 중이던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 사망 기사를 내보냈다가 30초 만에 삭제했다. 실제 사망 3년 전의 일이다. 잡스의 업적을 담은 기사에 대해 잡스는 “내 죽음이 대단히 과장됐다”며 마크 트웨인의 말을 인용했다. 미국의 문호 마크 트웨인(1835~1910) 역시 오보의 피해자. 1897년 ‘뉴욕 헤럴드’가 자신의 사망을 전하며 “빼어난 지성이 오직 돈 때문에 망가졌다”고 평가하자 “내 죽음에 대한 기사는 대단히 과장됐다(greatly exaggerated)”고 조소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헬무트 콜 전 총리, 넬슨 만델라 남아공 전 대통령, 피델 카스트로 쿠바 전 국가평의회장 등이 실제 사망에 앞서 부고 기사가 나왔다. 국내에선 2002년 코미디언 이주일씨가 숨지기 5분 전에 사망 뉴스가 떠 논란이 된 일도 있었다. 2015년 3월 CNN과 중화권 언론들이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사망 며칠 전 오보를 냈는데, 가짜 싱가포르 정부 웹사이트에 속았기 때문이다. 지난 8월 ‘Z’ ‘계엄령’ 등을 만든 그리스 출신 영화감독 코스타 가브라스의 사망 기사는 의도된 가짜뉴스임이 드러났다.

3일 저녁 ‘한국 영화계의 거장 신성일씨 별세’ 속보가 인터넷을 뒤덮었다. 가족들이 서울의 한 병원 장례식장을 예약하는 과정에서 흘러나온 정보가 삽시간에 퍼진 듯하다. ‘속보’에 이어 ‘오보’ 소동이 계속됐다. 신씨는 4일 새벽 2시 25분 눈을 감았다. 마지막 가는 길을 1초라도 더 잡고 싶었던 가족들에겐 큰 상처가 됐을 터다. 수백 개 매체가 ‘일단 올리고 보자’며 확인 없이 무한경쟁하는 디지털 시대. 마음이 무겁다. 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내고 신성일씨의 명복을 빈다.

김수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