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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홍반장, 청국이 아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08호 34면

일러스트레이터 밥장의 통영놀이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영화 속 홍반장. 우리 동네에도 그런 친구가 산다. 처음 통영에 오면서 동네 친구를 사귀려고 애를 썼다. 멋진 경치도 5분이면 충분하고 잘 지은 집도 3일이면 금세 익숙해진다. 멋진 경치나 제대로 된 집만 갖춘다고 동네 살이가 끝나지 않는다. 가볍게 만나 수다를 떨거나 편하게 밥 먹고 술 한잔 홀짝거릴 친구가 필요하다. 친구나 이웃이 없으면 홀로 남은 섬에 갇혀 사는 꼴이나 다를 바 없다. 친구나 이웃과 더불어 동네 살이 해결사 ‘홍반장’까지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우리 동네 홍반장 ㅈ군은 동네 친구들을 사귀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친구들이 모일 때마다 아는 동생으로 늘 함께 있었다. 20대 초반에 시바견을 키우는데, 개가 주인을 닮았는지 그 반대인지 아무튼 시바견 만큼이나 짧고 단단하며 늘 웃는 모습이었다. 시바견 이름은 청국이. 청국장처럼 누리끼리하다고 붙였다. 청국이 아빠 ㅈ군은 나랑 성씨에 본까지 같은데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모두 통영 사람이다. 좀 더 털면 족보가 꼬일(?) 것 같아 그냥 형 동생으로 지내기로 했다.

그는 서피랑에서 태어나 통영을 떠난 적이 없다. 친구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거의 다 떠나 졸지에 동네 막내가 되어 자의 반 타의 반 불려다닌다. 예를 들면 과학자나 음악가가 행사하는 날이면 뒤풀이 준비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청국이 아빠 몫이 된다. 수산회사에서 싱싱한 굴을 사고 새벽시장에서 미리 회를 떠 온다. 행사가 끝나면 ‘뽈뽈이(스쿠터)’를 끌고 미리 산 굴을 찾아와 마당에서 쪄낸다. 술이 떨어지면 편의점으로 달려가 챙겨온다. 오랫동안 집을 비운 사이 비라도 내리면 숨겨둔 우리집 열쇠를 찾아내 지하실에 물이 찼는지 꼼꼼히 챙긴다.

그는 통영 막내 역할로 그치지 않는다. 몇 달 전 나를 통해 통영을 알고 자주 찾아온 친구들이 함께 돈을 모아 오래된 아파트를 샀다. 그때도 청국이 아빠가 나섰다. “행님 친구도 행님과 다를 바 없다”며 집을 알아보았다. 저렴한 가격에 계약할 수 있도록 동네 어르신들을 잘 설득했다. 집을 수리할 때도 설비업체를 알아보고 공사 현장에 자주 들락날락 거리며 까다로운 서울 누나들 요구를 중간에서 잘 전달해 주었다. 이사하는 날도 서울까지 직접 차를 끌고 와 짐을 싣고 통영까지 옮겨 주었다.

그러다 보니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 ㅇㅇ이한테 연락해야지”“우리 ㅇㅇ이가 잘 알아서 할 겁니다”“행님, 안 그래도 우리 ㅇㅇ이한테 이야기해 놨습니다”라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언제부터 청국이 아빠는 ‘우리 ㅇㅇ이’가 되었다.

청국이 아빠한테 급히 부탁할 게 있어 잠깐 만나기로 했다. 통영대교 밑 공원에 있다고 해서 터벅터벅 걸어갔다. 다리 밑 바다를 낀 공원에는 바람이 불어서인지 무척 한산했다. 공이 바다에 빠지지 않도록 철망을 두른 풋살장에 혼자 청국이랑 놀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 ㅇㅇ이’도 다른 친구들을 따라 통영을 떠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바견을 잃은 주인 마음인지 아니면 반대인지 몰라도 몹시 쓸쓸했다. 그가 오래도록 통영에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차올랐다. 선뜻 아는 척하지 못하고 한참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청국이 아빠가 내 쪽을 돌아보고 예의 환한 얼굴로 급하게 인사를 건넸다. 나는 더 격렬하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작가ㆍ일러스트레이터ㆍ여행가. 회사원을 때려치우고 그림으로 먹고산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호주 40일』『밤의 인문학』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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