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자금 출처가 수사 초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통일민주당 창당방해사건의 중요배후인물로 지목돼온 이택희 전 신민당의원(55)이 검거됨으로써 이 사건은 단순한 「창당방해」차원을 넘어 「5공 정치폭력」의 본 모습을 드러내게됐다. 「용팔이사건」으로 일컬어진 이 사건은 처음엔 행동책「용팔이」김용남(39·구속중)의 검거와 배후규명에만 관심이 집중됐었으나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면서부터 장세동 전 안기부장 등「공작의혹」대상은 물론, 이택희·이택돈·이철승 전 의원과 S모·K모·L모씨 등 과거 야당인사들이 대거 수사선상에 오르면서 5공 최대의 정치테러로 손꼽히게 됐다.
5공때만 해도 사건자체가 축소된채 수사마저 지지부진, 의혹을 불러일으켰던 용팔이 사건이 6공들어 다시 거론되면서 「용팔이」김용남이 검거되고 사건관련자 하부조직이 계속 밝혀짐에 따라 검찰수사망이 시시각각 좁혀드는 것을 느낀 이택희 전 의원이 참석한 것은 이씨에 대한 검찰의 수배가 내리기 나흘전인 지난해 11월5일.
이씨가 잠적하자 검찰은 이씨 가족과 주변인물에 대한 끈질긴 내사를 벌였으며 이씨가2개월전부터 서울동선동2가 전모씨(67)집에 셋방을 얻어 은신중인 것을 확인, 11일 오전맏딸 (25)의 승용차로 외출하려던 순간을 덮쳐 검거함으로써 5공 최대의 정치폭력 열쇠를 찾게된 셈이다.
이씨는 검거당시『용팔이 사건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가라앉기를 기다려 자수하려 했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용팔이 사건」은 사건발생당시「당내문제」라는 이유로 경찰이 수사를 기피, 5공 당시 정치의혹으로 영원히 베일에 가려질뻔 했었다.
그러나 6공들어 여론이 빗발치자 검찰·경찰은 뒤늦게 수사를 재개, 「말단배후」김용남·이선준(49·전신민당 청년 1부장)씨를 검거한 것이 지난해 9월24일. 그러나 이들이 배후인물로 진술한 이용구씨(56·전신민당 총무부국장)는 이미 사흘전에 미국으로 도피, 수사는 벽에 부딪쳤었다.
지난해 10월5일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이용구씨가 해외도피당시 항공권구입에 사용한 수표번호를 단서로 국민은행 압구정지점·주택은행 을지로지점 등 서울시내 거의 모든 은행지점을 파헤친 끝에 막대한 자금이 범행전후 유출된 사실을 밝혀냈다.
검찰은 또 범행의 지휘본부격이던 서울 리버사이드호텔의 숙박부와 시외전화 기록장부를 추적, 이택희 전 의원의 보좌관 이정희씨와 수배중인 이승완씨(49·호국청년연합회총재), 윤영오 전 신민당 훈련원장 등이 범행기간중 호텔객실 26개를 빌어 창당방해를 배후 조종한 것을 확인, 이전의원을 새로운 연결고리로 지목, 그동안 수배를 해왔었다.
비록 검거된 이택희씨가 「제3의 배후」는 부인하고 있으나 억대 자금의 출처와 다른 야당인사·관권과의 결탁여부를 입증해내는 것이 앞으로 검찰수사의 과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용팔이 사건」은 87년 4월21일부터 나흘간 통일 민주당 창당대회가 열린 전국48개 지구당중 18곳이 각목·쇠파이프로 무장한 괴청년들의 기습을 받은 사건으로 사건의 시점으로 보아 애초부터 「야당내분」「단순폭력」으로 본 경찰의 입장은 의혹을 불러 일으켰었다.
그러나 수사를 재개한 검찰은 국민의 의혹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이 사건이 민정당의 내각제개헌안 확정(86년8월)-이민우 구상발표(86년12월)-이철승 전 의원의 내각제 지지발언(87년l월)-두 김씨의 신당창당선언(87년4월8일)-전전대통령의 호헌선언(87년4월13일)등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보고 이러한 맥락에서 용팔이 사건을 수사, 5공 최대의 정치폭력 베일을 벗기는데 수사력을 집중하게 된 것이다.
다만 당시 신당창당을 저지했을 경우 이득을 볼수 있는 세력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구체적 증거자료 수집을 통해 어느 선까지 진전될지는 앞으로 이택돈씨 등 사건당시 개입가능성이 큰 사람들에 대한 수사결과에 따라 밝혀질 것이다.
현재까지 통일 민주당창당방해의 가장 중요한 배후인물로 지목돼온 이택희 전 의원의 검거를 큰 계기로 5공 최대 정치폭력은 베일을 벗길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여진다. <노재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