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작업중 졸도 응급실 가기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지난해 크롬·수은·납·유기용제 등에 의한 직업병이 문제가 된데 이어 이번에는 염료제조공장에서 「직업성 천식」이라는 새로운 직업병이 집단발생,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직업성천식환자가 10명이나 발생한 인천 경인양행 사건을 계기로 분진·유해가스에 의한 천식유발 우려가 있는 화학·플래스틱·목재공장 등에 대한 당국의 점검·대책이 시급히 요망된다.
대부분의 직업병발생이 그러하듯 경인양행 역시 직업병에 대한 노사양측의 무지와 대비 소홀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작업환경=연세의료원 산업보건연구소(소장 문영한 박사)가 실시한 이 회사의 작업환경 측정결과에 따르면 4백평 크기의 이 회사 공장은 합성과·품질관리과로 구분돼있는데 공정이 차단되어 있지 않아 합성과의 반응탱크를 가동시키면 아황산가스·염산가스가 공장 전체에 퍼지고 품질관리과의 염료분쇄기를 가동시키면 염료분진이 전체 공장에 퍼지는 상태였다.
또 배기시설마저 부실해 이같은 분지·가스를 제대로 배출해내지도 못했다.
환자가 된 근로자 배상휘씨(34)는 『분쇄기를 돌리고 10분만 서있으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빨갛거나 파란 염료가루로 범벅이 되는 「지옥 같은」상황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배씨의 경우 20분만 분쇄기를 돌려도 천식발작이 왔고 작업중 2∼3차례 졸도, 응급실에 실려가기까지 했다.
근로자들은 집에서 베고 자는 베개가 염색될 정도였고 가래도 착색이 되어 나올 정도였다고 병원에서 호소했다.
회사측이 마스크를 지급했으나 입김에 젖으면 유해가스가 더 빨려 들어오기 때문에 근로자들은 벗었다 썼다하는 고통 속에 일했다.
회사측은 몇명의 환자가 발생한 지난해 7월부터 방독면을 주었으나 자주 갈아 끼워야 하는 필터가 제대로 지급 안돼 무용지물이었다고 근로자들은 말하고 있다.
지난해 12월말 이 공장의 작업환경을 측정한 연세의료원 산업보건 연구소팀은 분진·염산가스등이 허용 기준치에 육박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또 뚜껑을 열어둔채 공기중에 노출되어 있는 원료나 염료제품의 관리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됐다.
근로시간에도 문제가 있었다. 이 공장은 원래 1년내내 쉬는 날 없이 매일 12시간씩 장시간 근로를 했다. 지난해5월부터서야 3교대근무로 바뀌었다. 월급여는 30만∼40만원 정도.
◇발병=배씨의 경우 입사 1년 뒤인 87년 가을부터 호흡곤란을 느꼈다. 지난해4월에는 증세가 나빠져 한달반동안 입원·통원치료 후 출근했으나 가슴이 터질듯하고 배에도 가스가 차는 등 재발, 지난 1월초 재입원했다. 온몸이 가렵기도 했다.
중간에 출근했을 때는 약을 먹어야 작업장에 들어갈 수 있었고 하루 4∼5차례 발작이 일어났다.
나머지 환자들은 지난해9, 10월께 발병했으며 87년 이전에도 1∼2명씩 몸이 아팠으나 허약한 탓으로 돌리고 자비로 약을 먹는데 그쳤다. 생계에 급급해 이런 고통을 그냥 감수했으며 직업병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공장장 황한철씨(50)는 『공정상 염산가스등발생은 불가피하지만 미국·일본의 염료회사에 비해 결코 작업환경이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며 『직업병이 발생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회사측은 지난해 말부터 환경개선에 10억원을 투입, 합성시설자동화와 건조기 현대화 등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의학적 소견=전문의들은 미국·영국 등에서는 50년대부터 직업성 천식이 문제돼왔으며 화학·살충제·플래스틱·코발트·폴리우레탄 등 취급공장, 목재·밀가루·코피·목화취급공장 및 동물사육자에게서 발견됐었다고 밝혔다. 염료에 의한 천식은 지금까지 사례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천식은 최악의 경우 질식사에 이를 수 있다.
◇대책=경인양행의 경우 업주측이 성실히 조사에 응해 직업병이 확인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직업성천식이 발병한 사업장은 배기장치·공정자동화·신체보호구 지급·문제물질의 대체 등이 행해져야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각종 직업병 추방을 위해서는 당국이 「인권」차원에서 감독·응징을 강화하고 극단적인 공해업종 일부는 존폐문제까지 검토해야할 시점이 다가온 것이다. <인천=김정배·김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