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중국 국유반도체와 거래 금지령 … 시진핑의 ‘기술굴기’ 상징기업 타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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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이 기술 전쟁으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지난 4월 중국 통신장비 업체 중싱통신(中興·ZTE)을 제재한 데 이어 이번에는 중국 국유 반도체 회사와의 거래 금지령을 내렸다. 중국 기업의 지식재산권 탈취로부터 미국 기업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통신장비업체 ZTE 제재 이어 #중국과 반도체 전쟁도 본격화

미국 상무부는 29일(현지시간) 중국 국유 반도체 제조업체인 푸젠진화반도체에 대한 미국 기업의 수출을 제한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주된 이유는 “미국의 국가 안보와 경제 안보에 대한 우려”다. 상무부는 성명을 통해 “푸젠진화는 미국의 국가 안보와 이익에 반하는 활동을 할 중대한 위험을 지니고 있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푸젠진화는 중국 정부가 반도체 산업을 국가적으로 키우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쏟아부은 신생 기업이라고 전했다. 생산설비에 56억 달러(약 6조3800억원)가 투입된 것으로 전해졌다. 반도체는 중국이 첨단기술 육성 정책인 ‘중국 제조 2025’를 추진하는 데 필요한 핵심 품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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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젠진화는 2016년 2월 설립돼 내년 양산을 앞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WSJ는 푸젠진화가 미국 기술력에 기초해 제품을 생산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도 “푸젠진화의 새 설비는 미국이 원산지인 기술의 수혜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따라서 미국 기업이 이 업체에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나 기술 상품을 판매하는 게 금지되면 기업의 존속이 위협받을 수 있다.

미국 최대 반도체 업체인 마이크론테크놀로지는 지난해 12월 캘리포니아주 연방법원에 푸젠진화가 자사 기밀을 훔쳐갔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맞서 푸젠진화는 올 1월 중국 푸젠성 법원에 마이크론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중국 내 판매 일부 금지 결정을 얻어냈다. 이에 대해 마이크론은 중국 법원의 보복 조치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푸젠성 정부는 푸젠진화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푸젠진화에 대한 제재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ZTE에 대한 제재를 연상시킨다.

미 상무부는 지난 4월 대북 및 대이란 제재 위반 혐의로 ZTE에 7년간 미국 기업과 거래 금지라는 제재를 부과했다. 미국 기업으로부터 핵심 부품 공급이 끊기면서 도산 위기에 몰린 ZTE는 6월 미국과 합의를 통해 제재를 풀었다.

푸젠진화에 대한 제재는 ZTE보다 더 강경한 면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ZTE의 경우와 달리 지식재산권을 빼앗겼다는 미국 기업의 문제 제기만으로 해외 기업을 벌주는 선례로 남게 됐다. 상무부는 성명에서 “미국 기업의 반도체 경쟁력에 대한 우려가 있다”고 언급함으로써 이번 제재가 미·중 간 기술 우위를 둘러싼 갈등임을 숨기지 않았다.

박노형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보기술(IT)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 간 근본적인 기술 우위를w 선점하기 위한 신냉전이 본격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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