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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타고 다가온 그리운 금강산|북한, 부작용 각오 실리채택|원점서 맴도는 남북정치회담에도 자극제 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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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토분단이후 처음으로 북한산무연탄 2만t을 실은 화물선이 제3국을 거치지 않고 북한의 남포항을 떠나 인천항에 직반입된 2일 정주영 현대그룹명예회장이 역사적인 북한방문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당초 정 회장은 2월7일까지 북한에 머무르며 북측의 여러 인사들과 만나고 가능하면 이번 설날 선산에 성묘까지 할 것으로 기대됐었으나 일정을 앞당겨 귀국한 것.
정 회장이 서둘러 귀국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정회장의 이번 북한방문은 정치권이 해내지 못한 금강산공동개발과 시베리아공동진출 등에 원칙적으로 합의, 의정서까지 교환했다는데서 역사적인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
정 회장은 이번 방북에서 최수길 조선대성은행장과 의정서를 교환, 금강산공동개발에 관한 원칙적인 합의를 하고 오는 4월20일께 20여명의 조사단을 동행, 다시 방북하여 개발지구의 확정과 자금문제 등을 논의하기로 했다.
특히 4월의 정 회장 북한 재 방문은 이번처럼 제3국을 경유하지 않고 판문점을 통해 올라가며 만일 금강산이 개발되면 한국의 관광객들이 육로로 휴전선을 통해 관광을 할 수 있게 합의한 것은 분단40년의 장벽을 허무는 획기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또한 원산에 조선수리소나 철도차량공장을 합작으로 설립, 특히 조선수리소의 경우 소련선박의 수리나 개조를 하기로 합의한 것은 이번 정회장의 방북이 단발성이 아니라 장기적인 남북교류의 물꼬를 튼 것이라는 의미를 강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정회장의 방북을 계기로 앞으로 몇 건 더 있는 것으로 알려진 우리측 기업인이나 종교인들에 대한 북한측의 방북초청이 가시화·구체화돼 줄줄이 실현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남북경제 및 경제인교류는 나아가 그간 교착상태에 빠져있는 정치적 관계개선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돼 그 의미를 더욱 무겁게 하고있다.
이는 어찌보면 당연하고도 합리적인 수순으로 역시 남북한관계는 정치권보다는 경제적 실리가 우선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셈이다.
정 회장은 이번 방북에서 김일성은 비록 만나지 못했지만 정중한 접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진남포에 있는 화학공장과 시멘트공장을 방문했을 때 북측이 헬기와 벤츠를 제공한 것이나 고향인 통천에서의 융숭한 접대는 북한측이 정회장의 방북을 계기로 경제교류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회장의 방북을 계기로 품게된 이같은 여망과 기대가 그렇게 순순히 풀려나갈 것인지는 남과 북 사이에 가로놓여있는 체제와 이념의 장벽과 갈등이 워낙 크고 높아 속단하기가 어렵다.
물론 우리측은 노 대통령의 7·7선언이나 구자경 전경련회장이 연초 기자회견에서 밝혔듯 「우리가 손해를 보더라도 북한측에 실질적 도움을 주는」 남북한간 경제교류를 할 용의가 있다. 그러나 북한측은 「실리와 이념」 사이에서 고민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북한은 현재 외화와 생필품의 부족이 심각한데다 평양세계청년학생축전을 위한 대대적인 역사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실정이다. 이러한 북한으로서는 민족의 명산이며 세계적 관광지인 금강산일대를 개발, 외화를 벌어들일 마음이 굴뚝같은 입장이다. 또 남북경제교류가 그들에게 실질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응하고 싶기도 하리라고 보여진다.
그러나 북한으로서는 이러한 남북경제교류, 나아가 개방화가 그들 체제에 몰고 올 「바람」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바로 이점이 남북경제교류를 핑크빛으로만 볼 수 없게 만드는, 어찌보면 한계라고도 할 수 있다.
정회장의 이번 방북은 정회장의 표현처럼 북방정책에 정치적 기대를 걸고있는 「정부의 배려」와 부작용을 각오하고라도 경제적 이득이 있다고 판단한 북측의 「결단」이 합작으로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정 회장이 부분적으로 경제협력의 원칙에 합의 했을지는 몰라도 그것을 실현시키는데는 아무래도 양측 당국 차원의 합의와 지원이 필요하다.
어쨌든 미소간에 조성된 동서화해무드와 우리 나라와 헝가리의 외교수립 등에서 보듯 국제질서의 변화추세에 발맞춘 이번 정회장의 방북과 그 성과는 단절됐던 민족사에 새로운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그런 만큼 이 첫발자국이 궁극적으로 「민족에 도움이 되는」쪽으로 잘 풀려나갈 수 있도록 우리모두의 지혜를 총동원할 때인 것이다. <유재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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