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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고학력 거지가 늘고 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미국의 심장부 뉴욕이 거지의 천국이 돼가고 있다. 집이 없이 길거리와 지하철· 공원 등을 정처 없이 떠도는 홈리스(Homeless)라 불리는 무 주택자들의 수는 10만여명으로 웬만한 시 인구와 맞먹는다.
이들 가운데 대졸자나 중퇴자가 20%, 고졸자가 50%나 된다.
30%가 넘는 미국의 문맹률을 감안할때 이같은 거지들의 고학력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 연구소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이들 가운데 남자의 52%, 여자의 29%가 거지가 되기 전 3년 동안 직장생활을 한 경험이 있고, 이들의 출신성분은 전직 대학교수· 변호사·작가지망생·미식축구선수 등으로 다양하다.
무 주택자들이 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레이건 집권 후 저소득층의 생계가 더 어려워졌고 치솟는 아파트월세 때문.
월8백 달러 수입의 저소득가계를 예로 들면 30%가량의 각종 세금과 공과금을 제외하면 5백50달러 정도가 남는다. 여기서 전기·가스·전화요금을 빼면 남는 돈은 겨우 4백 달러 안팎.
최소 6백 달러인 방 한칸짜리 아파트월세조차 감당키 어렵다.
박봉과 중과세에 시달리기보다는 차라리 세금없는 구걸행위가 더욱 속 편하다고 생각되는지도 모른다.
이외에도 마약·알콜중독의 확산도 거지를 양산하는 주요인중의 하나다.
뉴욕시경에 따르면 마약거래로 체포되는 인원은 하루 평균 2백50명.
삶을 부지하기 위해 길거리로 나선 이들의 동냥수입은 지역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있다. 세계금융 중심가인 월스트리트나 세계무역센터 앞과 같이 목이 좋은 곳은 하루 수입이 60∼70달러로 어중간한 봉급장이 수입을 넘는다. 이는 세금이 없는 알짜수입이다.
브루클린이나 브롱스 등 저소득 층이 몰려 사는 변두리에서는 하루 5달러 벌이도 힘들다.
한인상가 밀집지역인 맨해턴32가에는 터줏대감인 한국인 K모씨도 끼여 있다. 그러나 K씨는 알고 보면 알부자다. 그동안 구걸로 모은 돈이 무려 5만 달러에 이르러 이제 거적을 벗어 던지고 사업을 하기 위해 가게를 물색 중이다.
포르노 영화관이 밀집돼있는 맨해턴 42가에는 각양각색의 거지들이 모여든다.
널리 알려진 거지왕 필로스는 이곳에서만 15년째 거지 노릇을 하고 있다.
한때 브로드웨이를 누비던 멋장이 신사였던 그는 한번 마약에 손을 댄 이후 패가 망신, 이제는 지나가는 행인들이 던져 주는 동전 몇닢에 생계를 의지하고 있다.
일정한 거처가 없이 거리와 지하철· 공원 등지를 전전하는 거지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추위나 배고픔이 아니라 질병이다. 병이 들면 구걸행위조차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영양실조· 피부질환· 폐결핵뿐만 아니라 AIDS(후천성 면역결핍증)에 시달리다 거리에서 죽어가기도 한다.
뉴욕시가 89년1월 현재 특별수용하고 있는 AIDS감염 걸인은 44명.
그러나 무 주택자 보조단체들은 AIDS 보균자를 약 5천여명으로 추정하고있다. 뉴욕시의 무 주택자 숙박소에 수용하고 있는 인원은 총 3만5천명. 이 가운데 가족을 가진 무 주택자들이 5천가구나 되며 어린이들이 1만여명이나 된다. 그 외에 공원과 거리를 전전하는 무 주택자가 6만여명이다.
뉴욕주 정신의학연구소의 앨머· 스트루닝 연구원의 87년 조사에 따르면 이들 가운데 75·7% 가혹인, 15·6%가 히스패닉, 6· 8%가 백인이며 기타가 2·l%다.
지난해 10월 맨해턴 한복판에서는 1천여명의 무 주택자들이 뉴욕시의 무 주택자 정책을 비난하는 시위를 벌였다.
미국의 심장부이자 세계경제의 중심지인 뉴욕의 거지증가는 퇴락하고 있는 미국경제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지 모른다. <뉴욕지사=공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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